칠십 평생 살다보니 내가 참 사랑스러워 -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김기순 할머니 1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라는 하지 ( 夏至 ) 가 곧 다가 온다 .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날인 소서 ( 小暑 ) 는 한 달 뒤이다 . 24 절기의 흐름대로 계절이 오고 가면 좋으련만 갈수록 더위는 일찍 찾아온다 .
몇 주 전 시장을 보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정오 전인데도 불볕더위로 숨이 막히는 이상한 날이었다 .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뜨거운 해 아래 서있으려던 찰라 옆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 두 분이 말을 걸어오신다 . 왜 그 햇빛에 서 있느냐 , 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
할머니의 빛바랜 파라솔이 만들어낸 넓은 그늘이 그 안이었다 . 나물 사라는 말도 아니었고 그늘 안으로 들어와 시원하게 있다가 불 바뀌면 후다닥 뛰어가라신다 . 그늘 안으로 쏙 들어가 할머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었다 .
하루 종일 할머니가 만든 그늘 안에 앉아 그들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5 월 넷째 주에는 작정하고 이야기를 듣겠다며 판을 벌였다 . 문화다양성 주간행사로 완주문화다양성 영화제 ‘ 되어보는 영화제 ’ 가 열렸다 . 완주문화재단과 완주미디어센터가 기획하고 진행한 일이다 .
영화는 휴 시네마에서 상영이 되었고 나는 근로자종합복지관 앞 광장에 천막을 펼치고 ‘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라는 이야기 부스를 운영했다 . “ 영화가 별 거 있나 . 내가 살아온 인생이 영화지 !” 평소에 어르신들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
매운 시집살이 , 외로운 타향살이 , 먹고 사느라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느끼는 이들 , 잠시 멈춰서 내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이들 . 평범하고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
피구왕이 되고 싶은 초등학생의 고민 , 고등학교 진학대신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고 싶은 소년과의 오랜 대화 . 아기 키우느라 영화 볼 틈이 없는 엄마 . 수줍은 젊은 농부 . 그리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지쳐갈 무렵 내가 만든 그늘 속으로 쏙 들어온 이가 있었다 .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 수영을 마치고 나오신 김기순 (75 ) 할머니다 .
‘ 내가 고생한 이야기 하면 책 한권은 거뜬히 쓰겠네 .’ 라는 표지판에 쓰인 문구를 유심히 보시더니 “ 내가 고생한 이야기 하면 책 한권이 뭐야 , 스무 권은 거뜬히 쓰지 .” 그렇게 첫 만남 이후로 김기순 할머니와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
사진 위에서부터 되어보는 영화제 이야기부스에서 김기순할머니와의 첫 만남, 둔산영어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선생님과 대화중인 김기순 할머니, 남편 전경석 어르신과 함께. 평생을 사람 보살피는 일을 하며 살았네 할머니의 고향은 익산시 용안면의 너른 평야다 . 젓갈로 유명한 강경의 아랫동네다 .
김기순 할머니의 아버지는 6.25 전쟁 통에 고향 서울을 떠나 외가댁 용안으로 피난을 왔다가 논농사 일을 배우며 그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 아버지는 수완이 좋아 농사지은 쌀을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좋은 가격에 팔았다 . 서울 갔다 온 날이면 늘 허리춤에 돈 뭉치가 그득했다고 한다 .
워낙 쌀이 풍족해 굶을 일은 없었지만 돈을 벌기만 했지 쓰지를 않는 탓에 가족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 아들만 있는 집에 첫째 딸로 태어나 아래로 어린 동생들 키우다 시피 돌봤다 . 부모님 곁에서 16 살부터 25 살 까지 논농사 , 보리농사 짓느라 사계절을 일과 함께 보냈다 .
25 살 무렵에는 아버지에게 파업을 선언하셨다고 한다 . 아무리 가족이라도 밤낮없이 일을 하는데 월급도 못 받는 것이 서럽기도 하고 이러다가 친정에서 평생 일만 하다 세월 다 보낼 것만 같았다고 한다 . 그로부터 2 년 뒤 친정 어르신들의 신중한 중매로 혼인이 이루어졌다 .
“ 시댁이 교육자 집안이었기도 했고 , 시집와서 풍부하니까 내가 친정을 잊어버리고 살았어 . 가지도 않고 . 그때는 걸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 . 애들 데리고 . 친정을 전혀 못가고 살았지 . 우리 엄마가 언제가 굉장히 서운하게 생각하더라고 .
딸 하나 있는 것이 얼굴 보기 힘들다고 .” 먹고 살 걱정 없이 풍족하게 살았으나 맏며느리라는 중압감과 열 명이나 되는 시동생을 돌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 친정에서도 동생들을 돌봤는데 시집와서도 시동생들 돌보며 5 년을 살았다 .
그 후로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 전경석 어르신의 발령으로 정읍 , 여산 , 함열에서 2~3 년 씩 살며 익산에서 35 년을 살았고 그 곳에서 정년퇴임 하셨다 . 할아버지의 일에도 정년퇴임이 있듯이 할머니 역시 나름의 정년퇴임을 치렀다 .
“60 대 초반까지 손주들을 10 년 간 돌봐줬는데 이제 다 컸고 내 일도 끝났지 . 나도 늙고 시어머니도 늙고서는 시어머니가 그려 . 내가 너한테 참 미안했다고 .”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10 년 전 , 퇴임 후의 삶을 위해 이곳 둔산리 아파트에 정착하셨다 .
“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것이 제일 부럽더라고 .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언제나 저렇게 인사를 할까 그랬는데 , 지금은 아는 사람 천지야 . 복지관 , 수영장 , 영어도서관 , 운동장 . 내가 거기를 제일 많이 가는데 가는 곳 마다 아는 사람이랑 인사하며 지내네 .
수영장에 한 번 들어가면 3~4 시간씩 있다 나와 . 수영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느라고 .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많이 와 . 자기 고민 이야기도 하고 나는 들어주고 .” 김기순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
계속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 내 속의 말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는 분이다 . 자녀분들과도 매일 통화하며 마음 맞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신다 .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산책하고 배우고 즐기고 싶다고 하신다 .
집안일에 매어 있느라 바깥 구경 못할 시절에는 주로 책을 읽으셨다고 한다 . 박경리의 토지 , 최명희의 혼불 , 김윤희의 잃어버린 너 . 할머니가 좋아하는 책들이다 . “ 속이 상할 때마다 썼던 글이 몇 권이 되더라고 . 지금도 매일같이 써 . 사소한 일들을 쓰는 거지 .
발표할 정도로 잘 쓴 글은 아니지 . 나는 그냥 속을 풀면 되니까 . 그렇게 글 쓰고 나면 마음이 참 후련해져 . 지금 와서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사랑한다고 .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 학창시절에 나는 내 외모에 자신이 없었어 . 나는 왜 못생겼을까 ..
내가 봐도 내 자신이 뚱뚱하고 . 하지만 이 세상에 나는 하나밖에 없는 거거든 .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 내가 나를 끝까지 사랑해야지 . 내가 어디가 또 있겠어 . 한 사람이잖아 . 뚱뚱하면 뚱뚱한데로 안 예쁘면 그런대로 나를 사랑하는 거지 .
칠십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았어 .”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답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남과 비교하며 허덕이기도 한다 . 70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
김기순 할머니의 편안해진 얼굴을 보며 모두에게 그 깨달음이 빨리 찾아오기를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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