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 소양면 화심도요 임경문 도예가 만덕산 서북쪽 끄트머리 , 이 동네 어르신들은 사기장골이라고 부르는 옛 가마터에 화심도요가 있다 . 40 년 동안 도자기를 빗어온 임경문 도예가와 그의 오랜 제자이자 친구이자 아내인 도헌이 이곳에 살고 있다 .
낯선 사람을 보고 짓던 개들도 이내 꼬리를 흔들고 나른한 고양이들은 다리 사이를 오가며 사람을 반긴다 . 고양이와 개들의 다정함에 홀린 듯 집 뒤편으로 무심코 따라 들어갔다가 눈이 부셔 순간 걸음을 멈췄다 . 열네 칸의 흙가마 사이로 오후의 햇살과 가마의 흙빛이 어우러져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
구릉같기도 하고 고귀한 왕릉 같기도 한 가마의 위엄에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 “ 선생님이 직접 만든 가마에요 . 벽돌을 직접 찍으셨어요 . 흙이 백톤 정도 들어갔죠 . 찍어낸 벽돌을 말린 후 축조해서 흙으로 덮은 후 가마에 불을 떼서 벽돌을 익힌 거죠 . 다 직접하세요 .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 없어요 .” 그들의 작업실은 절박했다 . 사람의 자리 , 쉼의 자리가 아니라 온통 흙과 도자기의 자리였다 . 흙을 처음 만진 뒤 온 삶이 도자기로 가득 찼다 . “ 선생님은 절박하게 작업하시는 분이에요 . 유년시절부터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
식사하시다가 생각나면 이야기해주시고 틈틈이 제가 곁에서 다 듣는 거죠 . 눈물나는 이야기부터 장난꾸러기 같은 이야기도 많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제 안에 많이 담았죠 . 나중에는 책으로 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 도헌의 입으로 그의 인생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
나와 도헌은 그와 눈을 맞추며 “ 통역 잘하고 있죠 ?” 되물으면 그는 소년처럼 베시시 웃는다 . 임경문 도예가는 선천적인 청각장애로 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읽는다 . 오랜 세월 함께 지낸 그들은 어려움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
그것은 말과 말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이기에 더 깊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나도 그들 사이에 고양이처럼 다소곳이 앉아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듣는다 . 그 시절의 흙을 찾아 이곳에 깃들다 . 2005 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
지금의 화심도요가 있는 곳 일대에서 15 세기 중엽 지어진 분청자 가마터가 발굴됐다 . 근처 골프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분청자가마 1 기와 소형가마 11 기 , 분청자가마와 관련된 파편들이 발견된 것이다 .
전체 길이가 33.4m 에 이르는 분청자가마는 국내 10 여 기의 분청자가마 중 길이가 가장 긴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 조선시대 관요가 설치되기 전 공납용 자기를 생산했던 중요한 가마였을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
그 당시 출토유물은 발굴조사를 진행해온 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보존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마터는 이미 사라졌다 . 가마터가 대대적으로 발굴되기 전 젊은이였던 임경문 도예가는 이미 이곳을 다녀갔었다 . 2014 년에 다시 이곳을 찾았고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가마터 곁에 자신의 가마를 지었던 것이다 .
“ 임경문 선생은 청화백자로 유명한 고수자기 라희술 선생과 , 강진청자로 유명한 광주 무등도요 조기정 선생에게 수년간 청자 재현 방법을 수련 받았죠 . 조기정 선생님은 청자유약재현을 해서 무형문화재를 받으신 분인데 우리 선생님이 열심히 배우는 제자여서 가마터 연구를 할 때 늘 데리고 다니셨데요 .
그러면서 파편 공부하는 방법을 그분한테 배운 거죠 . 전남과 전북의 가마터를 다니면 던 중에 지금의 이곳 가마터도 와서 보신 거죠 . 그때는 훼손 없이 도자기 파편들이 집채만큼 쌓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 이곳이 거대한 가마터였어요 .
그 기억으로 다시 이곳을 찾아 와서 ‘ 화심도요 ’ 라는 가마를 짓게 된 거죠 .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도 가마터가 있던 곳에서는 흙이 나와요 . 그때 당시 만들었던 흙이 . 예전에는 운송수단 같은 것들이 없잖아요 . 가마터를 짓는 조건이 주변에 흙과 물과 나무가 있어야 하거든요 .
선생님이 파편 공부를 하면서 이곳의 백토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 거죠 .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백토재라고 하는 곳이 골프장으로 매립이 되었죠 .
안타까웠죠 .” 아무래도 도공의 영혼이 깃든 것 같소 문화재 재현을 위해 몇 세기 전의 도자기 파편들을 보고 만지며 흙을 찾아 돌아다녔던 젊은이는 이제 예순살이 되었다 . 전시실에 걸려 있는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 눈빛은 형형하고 마른 얼굴이 날카로워 보인다 .
지금의 그는 개 ,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잘 웃는 동네 아저씨 같은 데 말이다 . 하지만 작업을 시작했다 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 “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 재현의 가치와 도자기의 근본이 뭐냐면 재현을 찾아가다보면 그 속에서 천년가까이 내려온 비법들을 만나게 된다는 거에요 .
어느 순간에 불쑥 만나게 된데요 . 계속 그 길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거래요 . 선생님은 그 길을 찾고 싶은 거죠 . 함께 살지만 스승이잖아요 . 아직도 지독하세요 . 도자기에서는 편법이 없어요 . 요즘 도자기 하는 방법으로 색도 넣고 무늬도 새겨 넣으려고 해도 절대 허락을 안 하세요 .
기본을 이해하고 그것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창작을 하면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선이 살아날 테고 거기에서 꽃이 필 텐데 . 모가지만 꺾어서 꽃병에 꽂아 놓듯이 맛보기로만 하는 방식이 잘못된 거라고 말씀하시죠 . 어려운 길이에요 . 진짜로 . 가끔은 울컥 답답할 때가 있어요 .
그런데 결국 만들다 보면 선생님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선조들이 만들었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며 찾아가다보니까 기본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흉내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
하다못해 찻그릇을 만들 때도 찻잎이 고이지 않게 , 물줄기가 어떻게 떨어지는 지 , 왜 그런지 항상 연구를 해야 해요 . 그냥 모양만 그럴 듯 하게 만들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죠 .” 도헌은 스승이 작업할 때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
초인적인 힘으로 같은 자세로 앉아 하루 종일 작업하는 사람 곁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때문에 감히 곁에 가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 생활 할 때는 보청기를 껴서 희미한 음의 높낮이를 느낄 수 있지만 작업할 때는 그 소리마저 방해가 되니 아예 보청기를 빼놓고 작업한다고 한다 . 더 고요해지기 위해 .
도헌은 한가한 틈을 타 스승에게 물었다 . 작업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 “ 도공 영혼이 들어와요 . 내 의지가 아니라 저절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에요 .” - 화심도요 임경문 , 도헌 도예가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
/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정보] 화심도요 공식 인스타그램 @hwasimdoyo ▪ 완주군 소양면 상관소양로 838-20 ▪ hwasimdo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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