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자 여행기 오늘도 아침 7 시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보다가 ‘ 이러면 안 되지 .’ 벌떡 일어나 고양이 밥을 주고 컴퓨터를 켰다 . 원고 마감을 해야 하는데 또 다른 짓을 하다가 마음이 무거워 울고만 싶다 . 다시 결심을 하고 하얀 배경 위에 한자 한자 쓰고 있다 .
마감을 끝난 뒤에 자전거를 타고 가을의 끝자락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해 본다 . 김군자 할머니 (1935 년 生 ) 의 일기 글을 따라 써보았다 .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영감님 밥을 해주고 오전 산책을 나서고 때로는 병원을 가고 동네 할머니랑 방앗간을 가기도 하고 길가에 핀 들꽃을 본다 .
해가 지면 어김없이 영감님 밥을 해주고 드라마를 보고 밤 11 시가 되면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 늘 반복되는 일상의 기록 같지만 군자 할머니는 일기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 “2018 년부터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 봉동에 있는 장애인복지관 들어가면서 한글교실에서 글을 배웠어 .
나는 한 번도 안 빠져요 . 병원 갈 일 있으면 다른 날 가고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계속 다녀요 . 거기 가면 마음이 편해 .
글을 잘 쓰진 못해도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쓰는 거야 .” 영자 , 순자 , 춘자 , 말자 , 숙자 , 금자 , 은자 , 경자 , 정자 등으로 불리는 할머니들은 많이 만나봤어도 ‘ 군자 ’ 라는 이름을 지닌 할머니는 처음 만나 본다 . “ 우리 아버지가 지어줬어 .
나는 속이 어질고 좋다고 군자라고 지었고 . 밑에 동생들은 김천자 , 김성인 .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으셨지 . 우리 아버지는 글을 많이 배워서 옛날에 토종비결로 사람들 사주풀이도 해주고 글로 풀어먹고 살았지 , 농사짓던 사람이 아니야 . 옛날에 전통혼례 할 때 종이꽃을 만들었어 .
폐백장식으로 문어발을 오려서 꽃으로 장식을 하고 . 그런 것이 아버지 돈 벌이었어요 . 글도 좋고 그림도 잘 그리셨어요 . 아버지가 꾸미는 걸 좋아해서 집도 예쁘게 만들어서 살고 직접 만들어 놓은 꽃이 항상 집에 있었어요 . 그래서 내가 꽃을 좋아하나봐 .
지금도 시장가면 반찬 말고 꽃을 먼저 봐 .” 해남에서 나고 자란 군자할머니는 지척에 바다가 있건만 마음 편히 나가 놀아 본 적이 없다 하신다 . 7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고 여섯 동생들 돌보느라 글을 배울 수 없었다 .
19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전쟁 통에 가족들이 피난을 다니며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 “ 나 19 살 때 눈이 아파서 눈 고치려고 부산을 갔는데 그 시간에 엄마가 돌아가셨어 . 치료한다고 눈에 검은 물을 들였는데 어찌나 울었는가 그때 눈에 물 들여놨던 것이 다 빠져버렸지 .
눈물로 다 닦아 버렸어 . 그렇게 눈에 하얀 막이 이렇게 껴서 한 쪽 눈이 안 보여 . 엄마랑 잘 살지도 못했어 . 그렁께 가슴에 한이 많아가지고 이런 걸 쓰는 거야 .” 해남에서 시작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먹고 살 것을 찾아 서울까지 올라가 오남매 낳고 키우며 50 년을 살아낸 이야기로 이어진다 .
살던 곳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건만 일흔이 넘어 다시 짐을 쌌다 . “ 일단은 공기 좋은 곳으로 오고 싶었고 . 막내 딸네가 완주 봉동으로 이사를 간다기에 따라 내려 온 거지 . 내 평생 이사 가는 것은 일도 아니야 . 서울 살 때 13 번 이사를 다녔어요 .
방세 올려달라고 하면 더 싼 데로 다니고 오남매 데리고 그런 고생을 하며 살았지 .” 아흔을 앞둔 군자할머니는 지금도 아침 9 시 30 분이 되면 집을 나선다 . 두 시간이 걸리는 산책길이다 . 멀리 가진 않지만 천천히 모든 것을 눈여겨보는 산책길이다 .
아파트 주변 텃밭을 지나며 이웃들이 키우는 배추 , 파 , 무 , 들꽃들 , 나무위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들은 그날 밤 할머니의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글이나 그림으로 남겨진다 . “ 난 일기를 안 쓰는 법이 없어 . 아무리 아파도 밤 11 시만 되면 꼭 써요 . 마음이 슬퍼 .
부모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가 마음이 항상 허전해 . 가을되면 마음이 이상해 . 그런데 이런 거 쓰고 그림도 그리고 나면 조금 이겨 불지 . 그렁게 계속 쓰는 거지 . 허미경 선생님이 일기 쓰라고 공책을 꼭 줘요 . 이 공책 한 권 가지면 두 달 쓰거든 . 나 사는 이야기를 다 쓰지 .
내 마음이 답답하니까 . 서울 살 때는 훨훨 날라 다니고 그랬는데 여기는 객지고 모르는 곳이니까 멀리 다니지를 못하지 .” 군자할머니는 서울 살던 시절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좋았던 때라고 기억한다 .
팍팍한 삶 속에서도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두 발로 걸었던 서울의 모든 길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 두 살 아래 여동생 김천자와 늘 함께 붙어 다니던 때였다 . 그들은 갑자기 자주 떠났고 그 순간은 가정을 잊은 채 방랑자로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였다 .
“ 서울 살 때 안 다닌 데가 없어요 . 아침에 내 동생이 김밥 두 개를 싸서 물하고 들고 나와요 . 그렇게 아침에 전철을 타고 거의 매일 돌아다녔어 .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볼 것이 많았어 . 저런 꽃을 봐 . 나는 꽃을 그렇게 봐 . 종로가면 꽃이 많이 있어 .
서울 시청 앞으로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 인천까지 가서 배타고 섬이란 섬은 다갔지 . 갈 수 있는 만큼 다 다녔어 . 아주 월척 없이 쓸고 돌아 다녔당게 . 그 동생이 3 년 전에 죽었어 . 그러니까 마음이 슬퍼 . 제일 친한 동생이었어 . 내 속을 제일 많이 알고 내 제일 친한 친구였어 .
나는 자식들한테 나 죽으면 화장해서 공기에 뿌려달라고 그랬어 . 죽어서 작은 항아리에 들어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해 . 나는 죽어서라도 훨훨 날아다니고 싶으니까 허공에 뿌려달라고 그랬지 . 서울 있을 때 안 가본 데 없이 돌아다녔던 것처럼 날아다니고 싶어 .
그렇게 같이 돌아다녔으니 내가 살았어 .” ‘ 그렇게 돌아다녀서 내가 살았다 ’ 는 말이 계속 맴돈다 . 군자 할머니는 살기 위해 돌아다녔다 . 지금은 몸이 불편해 집에서 반경 2km 이내의 길들을 돌아다닌다 . 그리고 그리움이나 허전함 , 슬픔이라는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일기를 쓴다 .
문득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 하루 동안 떠나는 이야기가 담긴 ‘ 박하경 여행기 ’ 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 여든이 넘어 한글을 배운 김군자 할머니는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을 이제는 글자로 잡아둔다 . 그렇게 ‘ 김군자 여행기 ’ 를 써내려가고 있다 .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