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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7.08.07

밥집 쥔장 내외의 한결같은 20년 밥심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7.08.07 17:49 조회 1,7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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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쥔장 내외의 한결같은 20년 밥심 화산 화평식당 김경희 · 정준모 부부 입추와 말복을 며칠 앞두고 있지만 올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되는 느낌이다 . 한 달 가까이 장마와 국지성 폭우로 시달리고 났더니 습기를 많이 머금은 폭염의 여름날이 시작됐다 .

그동안의 여름에 대한 기억과 여름을 나는 각자의 노하우만으로는 이 지독한 여름을 쉽게 견뎌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 상책이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최상책은 잘 먹는 것이겠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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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심 , 진심 , 충심 , 단심 같은 근사한 표현은 아니지만 밥심이란 말은 밥을 주식으로 먹고사는 한국인들에게 다른 말로는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내력과 큰 울림이 있다 .

아열대의 수증기 가득한 여름날씨에 모두가 밥심으로 살아가고 또 모두가 누군가의 밥심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고샅에서 밥심 내력 가득한 화산 화평식당 김경희 (63 세 ) 사장님을 만났다 . 번거롭고 고된 일이지만 화평식당은 이십년 째 솥밥을 고수하고 있다. “ 백반 육천원도 지금 십년 째 그대로야 .

우리 아저씨가 공기밥 값 못 받게 해 . 처음 장사할 때부터 공기밥 값은 따로 안 받았어 . 일하고 온 사람들 밥 많이 먹는데 그 돈 못 받겠더라고 . 야박하게 그 돈을 받아서 뭐 하냐 , 우리 아저씨 철학이지 . 우리는 솥단지에다가 냄비 밥해서 그때그때 해서 퍼줘 .

그러니까 손님들이 밥맛이 좋아서 오는 거야 . 냄비에다 밥을 하니까 누룽지가 막 쌓이네 . 그래서 누룽지도 끓여서 상에 냈지 .” 솥밥 불 조절을 하고 있는 정준모씨 메뉴판에 몇 가지 요리가 적혀 있지만 , 백반 하나로 지금 이 자리에서 20 년 가까이 식당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밥에 있었다 .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미리 공기에 담아 데워둔 밥을 내오는 식당문화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방금 해낸 솥밥의 맛을 몰라볼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 번거롭고 고된 일이지만 화평식당은 이십년 째 솥밥을 고수하고 있다 .

반찬과 찌개 담당은 김경희 사장님 , 솥밥 담당은 정준모 사장님의 일이다 . 백반의 진정한 맛은 밥으로 결정된다는 철학도 있었지만 사장님 내외가 솥밥을 고수하는 이유는 결국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삶의 내력을 일찌감치 터득한 탓이 클 것이다 . 반찬과 찌개는 언제나 경희씨의 담당.

“ 시집와서 봤더니 시어머니가 백반장사를 하고 계셨어 . 식당 이름이 고산집이었어 . 고산집하면 유명했지 . 우리 어머니 솜씨가 좋았어 . 그 당시는 연탄불도 없이 아궁이 세 개에다가 음식을 했지 . 불 때고 숯에다가 생선 굽고 김도 굽고 .

시어머니 돌아가시고는 장사를 안했는데 , 몇 년 있다가 함바집을 시작했어 . 다달이 현금으로 결제가 되니까 참 재미있더라고 .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밥 준비하고 , 둘이서 그 많은 사람들 밥을 삼시세끼 다 먹였지 .” 그렇게 시작된 함바집은 인부들의 일터를 따라 화산에서 정읍으로 , 고창으로 이동했다 . 사장님 내외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밥과 찌개의 맛이 인부들에게 인이 박힌 것이다 .

고생한 보람으로 제법 돈도 벌었지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지금 이 자리를 전세로 얻어 식당을 냈다 . 처음에는 손님이 들지 않아 고전했지만 가게 앞으로 도로가 뚫리고 다리공사가 진행되면서 공사장 인부들 덕에 호황을 누리가 시작했다. 화평식당에는 매번 열가지가 넘는 반찬에 찌개나 국이 나온다.

“ 그때는 도로 뚫리듯이 사람들이 막 밀려오더라고 . 많을 때는 칠팔십 명씩 와서 먹고 가는데 . 삼시세끼를 여기 와서 먹고 갔어 . 그러다보니까 소문이 나는 거야 . 안 오던 사람들도 다 오고 , 지나가다 주차된 차들이 많으니까 또 들어오고 . 그 당시 그 도로 공사를 4 년 동안 했었거든 .

그때 장사로 돈 벌어서 이 집 사버렸지 . 그때부터 이 근처 공사하는 인부들 여기 와서 밥 먹고 관공서직원들 와서 밥 먹지 , 농협 , 우체국 직원들 , 학교도 그때는 급식이 없었으니까 선생님들 와서 밥 먹고 .

그때는 손님이 하도 많아서 순번타서 밥 먹고 그랬어 .” 김경희 사장님의 고향은 전주 진북동 숲정이 근처라고 한다 . 친구 따라 대둔산 놀러갔다 남편정준모 (64 세 ) 씨를 만났고 삼년 동안 완행버스를 타고 전주와 화산을 오가며 연애한 끝에 결혼해서 화산에 살고 계신다 .

소재지 인구도 줄고 새로운 큰 공사도 더 없어 예전처럼 손님들이 줄을 서서 밥을 먹진 않지만 여전히 화평식당엔 많은 밥 손님들이 찾아든다 . 사시사철 먹을거리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밥 때 돼서 제대로 된 밥과 찌개 한 그릇으로 밥심을 채울 수 있는 식당은 흔하지 않다 .

“ 예전에 우리 집이 이 근처에서는 최초로 밥 배달을 했어 . 여기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 농번기 때 밥 배달을 했지 . 우리 아저씨가 여기서 원채 오래 살아가지고 어디라고 하면 다 알아 . 누구네 밭 하면 다 찾아 가지 . 어디 축사 옆에 누구네 논밭이 어디 있는지 다 알지 .

그때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 식당은 식당대로 배달은 배달대로 . 진짜 눈코뜰 새 없이 바빴지 . 그래서 농번기 때 양파심고 뽑을 때는 점심 장사 할라고 우리 딸래미 , 사위 , 조카까지 다 와서 일을 거들어야 했어 . 한참 때는 점심 배달을 이백 상 넘게 나가고 그랬지 .

여기 식당도 꽉 들어앉으면 백 명이 앉아서 먹고 순번타고 밖에서도 줄 서있고 그랬지 .” 화평식당은 인부들과 사람들의 밥심이 되어주었고 인부들과 사람들은 화평식당이 살아 갈 수 있는 밥심이 되어주었다 . 단순한 논리 같지만 밥심의 내력은 그 단순한 논리 속에 고단하고 긴 이야기를 품고 있다 .

모두들 뜨거운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그릇의 힘으로 아열대의 무더운 여름날을 이겨내 보자 . 어르신들이 대를 이어오며 가르쳐준 말처럼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므로 .

김경희 정준모 부부 “ 밥장사가 넘들이 배고플 때 , 힘들 때 , 그 입에 밥 한 그릇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큰 행복이다 . 그것이 복이다 생각하고 지금껏 살았어 .

식당일을 오랜 동안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는 동안은 계속 그 마음으로 하고 싶어 .” /사진 ·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밥집 쥔장 내외의 한결같은 20년 밥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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