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살 수만 있다면, 글자를 사고 싶었지 - 완주 구이면 미치마을 김영애씨 이야기 시골 돌아다니며 만나는 어르신들에게는 무조건 ‘ 할아버지 할머니 ’ 하며 강아지 마냥 애교를 부리곤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일이 아니다 . 연세를 여쭈면 대체로 나의 부모님 또래여서 놀랄 때가 많다 .
나도 그 사이 마흔 번이 넘는 봄을 맞이했으니 솔찬히 나이를 든 것 이다 . 김영애씨 (1952 년생 ) 처음 만나던 날도 반가운 마음에 ‘ 할머니 ’ 가 툭 튀어 나왔다가 급히 ‘ 할 ’ 자를 묵음처리하고 넉살 좋게 ‘ 어머니 ’ 로 바꾼다 .
스무 살에 이 곳 미치마을로 시집와서 올해 일흔 번의 봄을 맞이했지만 영애씨는 아직도 마을에서는 제일 막내둥이 , 농담 삼아 아가씨로도 불리 운다 . 몇 년 전 남편 먼저 떠나가고 혼자 사는 집이지만 쓸쓸한 기운은 찾을 수 없다 .
부지런히 가꾼 앞마당에는 진돗개 백호가 정신없이 뛰어놀고 집 둘레에는 노란 멜라초가 낮은 울타리마냥 둘러앉아 있다 . 뒷밭으로 향하는 집 한쪽 벽에는 손 떼 묻은 농기구들이 걸려있다 . 그 중에 낫과 호미가 제일 바쁜 모양이다 . 연한 산나물이 한창 나오는 때이다 .
요즘은 두릅 따서 시장에 내다 파는 재미가 좋다 . “ 몸에 배었어 . 이제 일을 그만해도 되는데 밭에 나가면 재미있어 . 내가 노력하면 이것도 돈이 되니까 . 그 돈으로 손주들 용돈주고 그런 게 재미있어 . 밭은 나에게 고마운 곳이야 . 나에게 효자고 놀이터야 .
나물 뜯어서 남부시장 새벽 장에서 파는 재미가 좋아 . 자식들도 처음에는 말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인 줄 알고 그러려니 하고 좋아 혀 .” 부지런히 가꾼 앞마당에는 진돗개 백호가 정신없이 뛰어놀고 영애씨는 요즘 나물뜯어 남부 시장에 내다파는 재미에 빠졌다.
글로 가지 못해 더욱 생생한 말들 영애씨 다섯 살 무렵 ,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자식들 키우기 버거워 다른 집에 수양딸로 보내지게 되었다 . 글을 가르쳐준다고 믿고 보냈지만 일하느라 배울 틈이 없었다 . “ 거의 식모살이를 했지 . 13 살 까지 그렇게 산 거 같아 .
커서 배우려니까 힘들어 . 창피한 줄은 아는데 글 배울 생각을 못 한 거여 . 속에다 응어리만 쌓아놓고 그 마음 안 들키려고 도리어 더 큰소리 치고 까분 거지 . 남한테 기 안 죽으려고 잘난 척하고 , 몰라도 아는 척 했던 것이 지금은 후회가 되지 . 그때 좀 창피한 거 참고 배울 걸 .
어디 돈 벌러 가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 . 친정집에서 한 동안 있다가 형편이 너무 안 좋으니까 17~18 살 먹었을 때 또 식모살이를 했지 . 우리 언니도 그러고 나도 그렇게 식모살이를 한 거야 .” 영애씨의 말은 유난히 생생하다 .
글로 풀지 못한 생각과 자연에 대한 묘사를 오롯이 말을 통해서만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까 . 영애씨가 입으로 내는 바람소리 , 물소리 , 고생했던 시절의 한숨소리들은 눈을 감고 들으면 그때 그 시절 어느 틈에 슬며시 앉아 듣게 되는 소리마냥 생생하다 . “ 스무 살 때 이 집으로 시집을 온 거야 .
설 쇠고 보름 쇠고 스무여드레 날 왔어 . 겁나게 추웠어 . 눈 오고 아이고 참말로 웬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지 개울에 물이 넘쳐흐르니까 큰 바위가 떡떠글 떡떠글 궁글러 가는데 , 열일곱살 먹은 우리 남동생이 나를 들쳐 업고 개울을 여덟 개를 건너서 왔어 . 속옷까지 싹 다 젖었지 .
남동생이 지금도 엄마를 공박한디야 . 그때 누나 업고 그 산골 개울을 건너던 마음이 어쩠겄어 .
누나를 이런 데로 시집보내는 마음이 ...” 올해부터 진달래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영애 씨의 노트 매운 시절도 언젠가는 연해지리라 모악산 남쪽 자락 , 질마재 아랫마을로 시집온 영애씨는 몇 년 동안 이 곳이 전주 변두리 어디쯤이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
살다보니 완주 산골 중에서도 완전 산골짜기였던 것이다 . 전기도 안 들어와 호롱불 켜고 살았고 번듯한 길과 다리가 생긴 것도 최근 일이다 . 이렇게 산골짜기로 시집와서 사남매 낳아 건강하게 키웠으니 예쁨 받으며 살줄 알았지만 시집 올 때 건넜던 개울물처럼 살 아리게 맵던 시집살이였다 .
“ 첫 애가 참 예뻤어 . 아들인데 쌍꺼풀진 큰 눈에 속눈썹이 어찌나 긴가 , 성냥개비 세 개씩 올라가 . 골짜기에 시집와서 이렇게 예쁜 아들을 첫 애로 낳았는데도 나를 예뻐해주기는 커녕 시어머니 , 남편이 어찌나 구박을 했는가 , 시집이라면 지긋지긋 혀 .
우리 큰 딸이 자기들 이제 다 컸으니 우리 걱정 말고 엄마 인생 살라고 이제 집 나가라고 해도 끝까지 버티고 살았지 ." 답답한 마음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 지금처럼 흔한 전화기도 없었고 친정어머니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었지만 글을 몰라 초등학교 다니던 옆집 꼬마에게 부탁해서 편지를 보내곤 했다 .
언젠가는 아침에 하는 TV 프로그램에 당당하게 출연하기도 했다 . 매운 시집살이를 견뎌낸 이 시대의 며느리들이 출연해서 속풀이 하는 기획이었던 모양이다 . 남편에게 구박받은 이야기를 세상에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더란다 .
주변에서 아는 체하는 사람도 생기고 ‘ 참 똑똑하고 대담하다 ’ 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 매섭던 세월들도 차츰 순해지기 마련이다 . “ 영감이 몸이 아프다보니까 나에게 의지를 하더라고 . 애아빠 돌아가시기 전부터 차근차근 정리를 했지 .
그 동안 미안했다고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음을 풀어주고 돌아가셨지 .” 그래서 그런지 영애씨의 얼굴 어느 곳에도 누군가를 미워했던 흔적이 없다 .
큰 딸의 권유로 43 살 무렵부터 주부학교에서 한글공부를 시작했지만 농사일로 바쁘다보니 빠지는 날이 많았고 그러다보면 겨우 들어온 글자들이 재빠르게 도망가곤 했다 . 올해는 한글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다 큰 딸 손잡고 완주 이서면의 진달래 학교에 입학했다 .
“ 돈 주고 살 수만 있다면 글자를 사고 싶어 . 글을 알긴 하지만 뜨끔뜨끔 쓰지 , 줄줄 읽고 쓰지는 못해 . 한글교실 사람들은 마음이 잘 통해 . 그 곳에서는 글 모르는 게 흉이 아니야 .
우리 가슴에 든 멍을 우리는 서로 잘 알지 .” 엉거쿠 , 냉이 , 싸랑부리 , 보리뱅이 , 담뱃대나물 , 취나물 , 고사리 , 두릅 , 챔빛나물 , 고춧잎나물 , 다래순 , 삿갓나물 , 횟침나물 . 영애씨가 요즘 매일 산과 들로 나가 뜯고 만지는 것들이다 .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전해 듣고 손으로 만져서 알게 된 것들이다 . 이 나물들의 이름을 한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 손주들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싶고 집으로 날아온 고지서들도 막힘없이 읽어내려 가고 싶다고 했다 .
그리고 아흔 넘은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편지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자주 보고 만져야 글자들이 영애씨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을 것이다 . 악착같이 글을 배워본다고 하셨으니 올 가을 쯤 이면 영애씨의 편지를 받아 볼 수 있겠지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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