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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2.06.23

눈 뜨자마자 싸리문을 여는 이유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6.23 10:55 조회 1,0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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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소리 봉림 ( 새터 ) 마을 송성례 할머니 송성례 할머니는 아흔 다섯 해를 살아왔고 오늘도 눈만 뜨면 여전히 밭에 나가신다 . 대문 밖을 나서면 양 옆으로 할머니의 밭이 있다 . 이곳은 말하자면 할머니의 직장이다 .

1947 년 정월달 , 스무 살 되던 해에 시집와서 여태껏 살고 있으니 75 년 동안 매일 밭으로 출근중이다 . 할머니의 오남매는 어머니가 밭일 놓고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겠지만 일 못하면 오히려 병난다며 새들보다 일찍 밭에 나가신다 . “ 지금도 여전히 밭에 나가니까 건강한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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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못하게 하는데 .. 밭에 못 나가면 내가 죽어 . 일 안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해 .” 지금은 밥하기 싫으면 빵 사먹고 고기 사다먹는 세상이라지만 할머니 젊은 시절은 어찌 그러했을까 .

오로지 땅에 붙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대식구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 . 여러 해 쌓인 세월이 흐릿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전 기억은 또렷하다 .

일본군들이 총칼을 들이대며 집집마다 숨겨놓은 나락을 빼앗아 가던 기억 , 용진면 지서가 있던 큰 동네에서 인력거 타고 초포다리 건너와 가마타고 고불고불 마을길로 들어오던 새색시의 마음 . 처음 봤던 새신랑이 마음에 들어 좋았던 기억 . 그 기억들이 할머니의 표정과 언어로 되살아난다 .

“ 그렇게 다급한 시대를 살았어 . 인공 때 , 하늘서 비행기가 막 떠다니면 집을 짓다가 숨어 . 또 비행기가 지나가면 나와서 집 짓고 그렇게 이 집을 지은 거야 . 시집 왔을 때는 초가집이었어 , 나락 농사지은 지푸라기를 엮어서 지붕을 얹었지 .

일 년만 되면 짚이 썩어서 하늘에서 물 떨어지고 그랬어 . 그걸 이승만 대통령 때 쓰레이트로 싹 바꿨지 . 이 집이 참 오래 묵은 집이여 . 내 집이 좋아 .

나는 여기로 시집와서 여기서 죽어나가고 싶어 .” 자신의 인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지만 농사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 씨 뿌리고 정성껏 키우고 거둬들이고 갈무리한 농산물을 장에 나가 직접 팔기도 했으니 말이다 .

위부터_ 할머니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당을 지나 싸리문을 열어 놓는다. 한평생 고마웠던 학독. 동네사람들이 함께 사용했다. 인절미도 만들어 먹고 고추 갈아서 여름김치 담가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전히 사용 중인 아궁이 재를 걷어낼 때 쓰는 당그래.

“ 전주장 , 봉동장 , 고산장 , 안 나가는데 없이 다 나갔어 . 대파를 많이 팔았어 . 할아버지가 지게에 싣고 신작로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에다 실어다 주면 나는 남부시장에서 팔고 다시 시내버스 타고 들어왔지 . 대파도 물건이 좋아야 남보다 하나라도 더 팔아 .

맵시나게 다발 묶어서 보기 좋게 팔아야지 . 나도 고생 많이 했어 . 그런데 그런 거는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어 . 내 생활이 그것 잉게 . 그걸로 먹고 살고 새끼들 다 가르치고 했응게 . 농사짓고 사는 사람 중에 이런 고생 안하는 사람있간이 . 우리들 젊었을 때 그러고 다녔어 .

그래도 그때가 좋은 때였던 게벼 . 배는 고팠어도 그때가 좋았어 .” 무엇이든 갈급하던 시절이었다 . 밭에 나가서 뜯어온 상추위에 보리밥에 된장 , 고추장 슥슥 묻혀 얹어 입에 한 가득 먹으면 왜 이리 맛있던지 , 할머니는 별 것도 아닌 그 맛을 지긋지긋하게 맛난 맛이라고 표현했다 .

지긋지긋하게 맛난 맛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맛이다 . “ 논농사가 제일 힘들었어 . 소가 땅 갈고 사람이 들어가서 못자리 봐가면서 모 심고 . 다 사람이 했지 . 낫으로 베고 . 나락 마르면 홀테로 훑고 . 지금 논농사는 기계가 하니까 편하지 . 내가 손이 작아서 부지런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저 손 쪼깨 봐 , 참 부지런하다 그랬지 . 나는 원래 앉아있지 못해 . 깝깝해서 못 앉아 있어 . 그러니까 저 구렁배미 들녘까지 다 모심으러 다녔지 . 밤낮없이 . 재밌어 . 젊은 동네 사람들이 술 한 잔씩 하면서 모 심으면 왜 그렇게 재밌어 .

샛거리 먹고 일하고 또 쉰다고 먹으면서 놀면 왜 그렇게 재밌어 . 그때는 노래도 많이 했어 .” 그때 불렀던 노래 좀 해달라고 떼를 썼는데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듯이 .

고요한 노래가 시작되더니 잠시 흐르던 정적은 사라졌다 .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 잊어버려서 잘 하덜 못혀 . 또 무슨 노래를 좋아했냐면 .. 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못 잊게 하네 .” 목포의 눈물과 울어라 기타줄 .

나는 이제 이 노래를 잊지 못할 것 같다 . 가늘고 떨리는 음색이지만 섬세하게 넘나드는 노랫가락이 그날의 논배미를 넘나드는 듯 했다 . 작지만 일을 겁내지 않는 할머니의 몸은 땅과 가까이 있을 때 살아난다 . 할머니의 오래된 집 구석구석에는 곧 땅으로 돌아갈 씨들이 볕에 잘 마르고 있다 .

“ 대파씨 , 쪽파 , 아욱씨 , 상추씨 , 시금치씨 , 무씨 , 쑥갓씨 . 온갖 씨들이 나 시집 올 때 농사지을 때 받아 놓은 씨를 지금까지 이어오는 거야 . 씨앗들 보면 기특해 . 내 재산이야 . 시골 살려면 다 받아서 농사지어야 해 . 시부모님 시누들 큰 형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씨들 ..

그 전의 어른들로부터 내려온 씨니까 . 이 씨가 나보다 더 할머니야 . 되먹고 되먹고 받아놓았다가 먹는 거야 . 몇 천년이나 되었나 몰라 . 우리들이 평생 먹고 살아야 하니 없어지면 안 되는 거야 .” 위부터_ 할머니의 남편 故오종영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다정하신 분이었다.

할머니가 밥할 때 편하라고 오남매 업어 보살폈다. 상추씨 받기 전 볕에 말리고 있다. 건조 중인 아욱씨 옆에 씨 털어낼 때 쓰는 작대기와 빗자루도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고학력을 갖춘 이들이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더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

시골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깨우치게 한다 . 송성례 할머니는 학교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밭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달았다 .

가을 추수할 적에는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한 줌이더라도 세상 제일가는 부자가 된 듯하고 봄에 새싹 돋는 것을 볼 때면 사람 인생이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 작고 오그라 들었던 것이 너슬너슬 잎을 펴고 커가는 것 .

사람도 죽었다 다시 태어나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인생이 피기도 하는 것이다 . 그러니 봄에 돋아나는 새싹을 보면 사람과 같다 . 그렇게 일 년이 금방가고 세월도 가는 것이다 . “ 내가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싸리문 열어놓는 거 .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니까 .

싸리문 늦게 열면 사람들이 나 죽을 줄 아니까 매일 눈뜨면 하는 일이 싸리문 열어놓는 거야 .” 초록색 철문이건만 할머니는 여전히 그 문을 싸리문이라고 부른다 . 할머니는 오늘도 제일 먼저 싸리문을 열고 밭으로 출근하실 테다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눈 뜨자마자 싸리문을 여는 이유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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