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디어천국 . 12 평의 복사집 이서면 에코르 2 차 아파트 송승규 어르신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줬지만 그만큼의 것들을 사라지게도 했다 . 그 중의 하나가 오래된 인쇄문화들이다 .
지금은 컴퓨터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인쇄가 되는 시대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인쇄의 공정이 있었고 그 공정들에 따르는 전문기술과 그만큼의 세분화된 직업들이 존재했었다 . 옵셋인쇄 , 필름인쇄 , 마스터인쇄 등 서로 다른 인쇄의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 송승규 어르신 (72 세 .
이서면 거주 ) 이 설명해주신 활판인쇄 시절의 문선 , 조판 , 공타 , 청타 등의 단어들은 컴퓨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신비롭고 낯선 것들이었다 . “ 전북일보에서 문선일을 시작했지 . 지금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질 않았어 .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
지면 사이즈를 보고 부분 편집을 하는 거지 . 그럼 그 사이즈에 맞는 와꾸를 짜서 그 안에다가 글자를 뽑아서 넣는 거지 . 문선은 글자판에서 글자 한 자 한 자를 뽑아서 조판하는 일인데 손이 한 번 가면 두 번은 안가 . 하도 이 안에서만 생활을 하다보니까 입력이 돼서 글자들이 어디 있는지 다 알아 .
내 주력은 공타였지 공타가 청타로 바뀌고 청타를 오래하다가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그 작업들은 다 없어졌어 .” 활자를 뽑아 쓰던 손으로 카메라를 들다 송승규 어르신은 작년에 이서 혁신도시 주민들과 함께 진행한 주민시네마스쿨을 통해 만났다 .
어르신은 지난 2012 년 , 오랜 동안 이어오던 인쇄소를 정리하고 전주대학교 인근에서 12 평짜리 작은 복사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 그사이 방송통신대학에서 미디어영상을 공부하고 익산미디어센터에서 실버영상제작단 활동을 하면서 몇 편의 다큐와 단편영화도 만드셨다고 한다 .
어르신에게는 본인이 해 오셨던 문선 , 공타 , 청타 , 복사로 이어지는 인쇄공정의 작은 역사들이 결국 지금 하고 있는 미디어 활동과 맞닿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 “ 방송통신대는 집사람이 먼저 다니기 시작했지 . 근데 거기에 미디어영상과가 있더라고 . 왠지 친숙했어 .
그래도 내 평생 직업이 미디어랑 연관 있다고 생각하니까 . 칠십 지나서 지난 일을 생각해보면 내가 맞이해야 할 흐름이라고 생각해 . 지금 생각해 보니 마치 각본 짜 놓은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더라고 . 디아이텍이라고 큰 인쇄소가 있어 .
거기서 기다리면서 쌓여있는 전단지를 무심코 봤는데 그 많은 전단지 중에 하필이면 미디어센터에서 수강생 모집 전단지가 눈에 띄더라고 . 실버 영상제작단 모집을 하더라고 . 그래서 거기서 처음 영상을 시작했지 .” 밥 먹듯이 밤샘하던 인쇄소 시절 어르신은 전주 인쇄골목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
그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은 인쇄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기술과 공정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고유한 문화이고 생생한 미디어였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 “ 계문사 시절에 직원이 많이 있을 때는 열 명 있었어 . 하루에 여덟 시간 근무하면서 많이 해야 A4 용지 크기로 16 장 .
열 명이 하루에 160 장정도 밖에 못하지 .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월급이 적었어 . 근데 가다보니 저녁 12 시까지 불 켜져 있는 곳이 인쇄소 골목이더라고 . 떼돈 벌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바쁘더라고 .
도청 , 시청 사업계획서 , 지침서 문서작업부터 대학생들 석박사 논문 작업까지 일은 밀려 오지 , 일주일째 잠을 못 자던 때가 허다했지 .” 인쇄골목의 인쇄소들은 대부분 영세업이었다 .
가게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후미진 뒷골목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쇄골목이 형성되었고 송승규 어르신은 그 곳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 한참 인쇄소를 운영하던 때 , 옆 가게 인쇄소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들은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
복사집 앞에 선 송승규 어르신 “ 할머니가 우리를 보면서 젊은 사람들이 무슨 애로사항이 그렇게 많아 ? 뭐하는 사람들이여 ? 그러시더라고 . 그래서 ‘ 인쇄업을 하고 있습니다 .’ 그랬지 .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아이고 점잖은 사람들이로구만 그러더라고 .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쁜 일만은 아니 것다는 생각을 했지 .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더라고 . 영세업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지 . 할머니의 그 한 마디가 그때는 굉장히 감동스러웠어 .
그야말로 문자를 다루는 직업에 내가 종사하고 있었던 거야 .” A4 용지 두 박스 들 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세상은 사람들이 미처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 그러고 보면 어르신은 참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셨던 것 같다 .
스물아홉에 계문사라는 인쇄소를 시작으로 활판인쇄부터 시작한 어르신의 문자미디어 인생은 첨단 컴퓨터 복사기를 다루는 지금의 복사집으로 이어지고 , “ 지금은 읽는 시대가 아니고 보는 시대 ” 라고 미디어의 변화와 흐름을 직관적으로 짚어내는 모습에서 적지 않은 연배에도 캠코더와 영상편집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
12평의 천국 다큐 중 한 장면 “ 다큐를 한 편 만들었지 . 제목은 <12 평의 천국 > 이라고 지었어 . 이 복사집이 딱 12 평이거든 .
복사집 작업하는 것 ,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 어렸을 때 어떻게 커왔고 결혼해서 아이들이 잘 커서 사회활동도 잘 하고 있고 , 그래서 현재 내가 있는 이 곳 12 평이 결국 천국이다 , 이런 내용이야 . 전주대학교에 영상학과가 있어서 그 친구들이 콘티나 시나리오 같은 거 제본하려고 가져와 .
그럼 그 친구들한테 나도 이거 하나 다운받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보면서 공부하기도 하지 . 말년에 참 좋아 . A4 용지 두 박스만 들 힘이 있으면 그때까지 이 복사집 할거야 . 그 정도 들 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 자신의 생애사 기록을 위해 오래된사진들을 정리해서 스캔받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르신은 지금 어르신의 생애사를 영상으로 만드는 준비를 하고 계신다 . 학교가 개학해서 바빠지기 전에 가족사진을 정리하고 그것을 한 장 한 장 스캔해서 파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
그 과정이 한 번 손이 가면 두 번 손이 가지 않았다는 어르신의 왕년의 문선 공정처럼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은 아니겠지만 어르신이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처럼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생애사 영상이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 지금 어르신의 12 평 복사집은 어르신의 미디어 천국이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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