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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0.06.12

김관장의 팔뚝으로 돌아가는 하얀풍차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0.06.12 10:56 조회 1,36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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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면 김광수씨의 하얀풍차과자점 햇볕 좋은 날 화분에 물주기 , 선선한 오후에 자전거 타고 산책하기 , 등받이가 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들기 . 이런 것들은 나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들이다 . 나의 ‘ 소확행 ’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

빵집에서 쟁반을 들고 맛있는 빵을 고르는 일이다 . 빵을 골라 담는 그 잠깐 동안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된다 . 빵집도 기왕이면 좀 오래된 동네빵집이면 더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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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이나 포장지 디자인은 프랜차이즈 빵집에 비하기 어렵지만 직접 반죽해 만든 빵을 그날그날 구워 파는 동네빵집의 구수한 냄새가 나는 더 정감 있어서 좋다 . 하지만 프랜차이즈 빵집도 그리고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는 동네빵집들도 각자의 이유들로 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

운동좋아하는 김광수씨 작업장 뒤쪽에는 글러브와 샌드백이 상징처럼 걸려있다. “ 스무 살에 친구 소개로 풍년제과 본점에서 일을 배웠죠 . 전에는 풍년제과 지점이 참 많았어요 . 여러 지점 돌아다니면서 경력 쌓다가 전주 안골점에서 공장장을 한 3 년 했어요 . 그 풍년제과가 지금은 파리바게트로 바뀌었죠 .

지나고 나니까 제가 풍년제과 전성기를 함께 한 거죠 . 수능 때는 전쟁 통이었어요 . 밤새도록 찹쌀 반죽해서 모찌를 만들었어요 , 예전에는 명절 때 롤케익 선물을 많이 했거든요 , 그럴 때도 호황이고 크리스마스는 말도 못해요 . 그때 케잌 팔아서 1 년 먹고 산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

다 옛날이야기죠 . 예전에는 미팅한다고 하면 빵집에서 빵이랑 우유 먹으면서 만나고 그랬잖아요 . 지금은 만날 데가 천지인데 누가 빵집에서 만나요 . 그때는 빵이 거의 유일한 간식이었어요 . 특별한 날 빵집에서 빵을 사고 그랬던 시기였죠 .

그 당시 제과점하던 선배 형들이 이삼층 되 는 건물을 가질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망하면 다행이더라고요 .” 나는 밀가루 반죽하는 막노동꾼 김광수 (47 세 ) 사장님은 상관면 지큐빌 아파트 앞에서 15 년째 동네빵집 ‘ 하얀풍차과자점 ’ 를 운영하고 있다 .

임실이 고향이고 전주에서도 잠깐 생활했지만 사장님은 상관에서 이십년 째 살고 있다 . 빵집 이름이 참 정겹다 . 예전에 유럽에서는 풍차를 이용해 밀을 빻았고 밀가루는 하얀색이니 자연스럽게 ‘ 하얀풍차 ’ 가 되었고 이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고 한다 .

스무 살 때부터 빵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니 3 년만 더하면 30 년 빵 인생을 사는 것이다 . 이제는 빵 만드는 일이 좀 쉬워졌을 법도 한데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고 고된 일이라고 한다 . “ 고향 임실에서는 농사를 지었죠 . 고등학교는 공고를 나왔어요 .

기계를 만지게 될 줄 알았는데 정 반대 일을 하게 된 거죠 . 제가 밀가루를 만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새벽에 나와서 저녁 10 시까지 버텨야 하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에요 . 혼자 하다보니까 아침에 늦게 나와서는 일을 다 못해요 .

그러니까 저녁에 내일 만들 빵 재료들을 다 준비 해놔야 해요 . 제고도 체크해야지 빵 만들어야지 , 도무지 시간이 안나요 . 그래도 오후 4 시가 되면 잠깐 짬을 내서 면사무소 헬스장으로 가요 . 체력을 유지하려고 서른 살부터 운동을 했어요 .

트레이너 자격증도 있고 아내랑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도 땄죠 .” 그러고 보니 빵집 사장님 팔뚝이 예사롭지 않았다 . 면사무소 헬스장에서는 워낙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다 함께 운동하시는 동네 어르신들 자세도 봐주고 하다 보니 사장님을 ‘ 김관장 ’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가게를 내고 처음 몇 년 동안은 명절날 빼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며 빚도 갚고 집도 마련했지만 , 지금은 그렇게 일해야 될 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건강하고 길게 빵 만드는 일을 하려면 운동도 하고 쉬어가며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

종업원을 두지 않고 아내와 둘이서 일할 수밖에 없는 동네빵집 사장님은 애환도 있었지만 자부심도 남달랐다 . “ 빵집에 들어가면 아기자기하니 별로 힘든 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 그런데 매장 뒤쪽 작업실은 달라요 . 막노동의 현장인거죠 .

공사장에서는 시멘트를 주무르고 나는 밀가루를 주무르는 거죠 . 밀가루 만지는 막노동꾼이에요 . 그래도 내 빵은 내가 만든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 이쪽 업계에서는 동네빵집을 윈도우라고 해요 . 브랜드 제과점에서 일을 시작하면 반죽하는 기술을 못 배워요 .

완제품이 본사에서 내려오면 그걸 오븐에 구워서 내면 되니까요 . 윈도우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은 모든 작업을 다 수작업으로 하는 거니까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어요 . 힘은 들지만 마진율은 좋죠 . 대신에 욕심을 부릴 수가 없어요 . 혼자서 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많이 만들 수가 없는 거죠 .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면 좋은데 제가 만들 수 있는 만큼 하루하루 만드는 거죠 . 혼자 하는데 내 하루 일 양이 10 만원이라고 하면 그만큼만 만들어야지 20 만원 어치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 추를 달아서 이용하는 저울.

20년 동안 고장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도 식빵 반죽 무게 달 때 사용하는 저울이다. 사장님 말대로 사람들 입맛도 빠르게 변하고 지금은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훨씬 많아졌다 . 치킨도 있고 피자도 있고 편의점에 가면 별의별 먹을거리들이 한 가득이다 .

그래도 곱게 빻은 밀가루에 계란과 우유를 넣어 힘껏 반죽하고 밤새 향긋하게 숙성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 구워낸 신선한 빵을 대신할 음식은 많지 않다 . 도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소소한 동네 빵집 붐이 일어 새로운 종류의 빵들을 만들어 팔고 있다 .

김광수씨도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시도를 몇 번 해보았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 15 살이 된 하얀풍자과자점의 효자노릇은 앙꼬빵과 소보로빵이 도맡아 하고 있다 .

오래된 동네빵집은 사랑방이다 육학년 때부터 드나들던 꼬마 아이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청년이 되어서도 사장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빵을 사러 온다 . “ 다들 힘들겠지만 요즘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어요 .

전 같으면 한일장신대나 초등학교 , 중학교 , 관공서에서 단체 주문도 제법 들어올 때인데 개학도 안하고 행사도 안하니까 주문이 많이 줄었어요 . 그래도 단골손님들 보고 장사합니다 . 동네 사람들을 많이 알죠 . 쟤는 이렇게 수시로 잘 놀러 와요 .

쟤네 이모 , 삼촌 , 고모 온 집안 식구들 다 알아요 . 빵 사러 오시는 손님들이 이웃이기도 하고 오랜 단골손님들이죠 .

우리 집처럼 이런 동네 빵집은 직접 다 만드니까 손님들도 이것저것 먹어봐도 우리 집 식빵이 쫀득하니 맛있다고 그래요 .” 어린이 시절부터 빵사먹으러 놀러오던 이웃들이 청년이 되어서도 빵을 사러 온다. 매장 위쪽 선반에는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커피 용기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

꾸준한 운동으로 팔 근육을 키우고 짬 내서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장님의 느긋함은 어쩌면 더 오랜 동안 커다란 하얀 풍차를 돌릴 수 있는 힘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 코로나 사태로 힘든 나날이지만 일상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 아침 7 시 즈음이면 그날의 첫 빵이 나온다 .

동네 사람들이 일어날 때쯤 구수한 빵 냄새가 풍길 것이다 . 풍차 돌아가듯 이 일상이 계솔 돌아가기를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김관장의 팔뚝으로 돌아가는 하얀풍차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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