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돌봄의 연결망 속에 산다는 것. - 고산면 어우리 전경애 씨 : 완주노인복지센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 대뜸 ‘ 밥은 챙겨먹고 다니냐 ’ 는 꾸중같은 질문을 던지고 텃밭으로 총총총 사라졌다가 푸성귀를 잔뜩 들고 오는 동네 할머니의 무심한 다정함 .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 어디 가냐고 ’ 묻는 동네 할아버지의 장난스러움 . 특별한 용건 없이 전화해서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들 . 배고픈 길 위 동물 친구들의 밥을 챙기고 하루 종일 묶여 있는 마당개들과 산책하는 이들의 발걸음 .
며칠째 닫혀 있는 동네 어르신 댁의 대문이나 텅 빈 빨래줄 , 혹은 며칠째 널려있는 똑같은 빨래를 감지하고 문을 두드려 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 이 모든 마음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무한 증식하는 것이 상호 돌봄의 시작 아닐까 .
작년 한 해 동안 ‘ 돌봄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 ’ 이라는 책을 곁에 두고 수없이 읽었다 .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규모의 삶을 가로질러 가족으로 한정되는 돌봄의 범주를 새로이 규정하고 돌봄의 관계를 맺는데 인간 ,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그 개념으로 ‘ 난잡한 돌봄 ’ 이 등장하는데 ‘ 난잡함 ’ 이라는 개념을 ‘ 가벼운 ’ 또는 ‘ 진정성 없는 ’ 이라는 의미가 아닌 돌봄의 관계를 맺는 데 대상을 구별 또는 차별하지 않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돌보며 그 관계를 무한히 증식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쓰임이 된다면 전경애 (56 ) 씨 는 완주군 고산면의 최고참 노인돌봄생활지원사이다 . 2020 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 노인돌봄생활지원사 ’ 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되었고 경애 씨는 완주노인복지센터 소속으로 지금껏 활동하고 있다 .
주로 하는 일은 일상생활 지원 ( 말벗 , 식사 도움 , 청소 , 외출 동행 등 ), 안전 확인 및 정서 지원 , 생활 상담 및 서비스 연계 ( 복지관 , 병원 등 ), 위기 상황 시 응급 대처 및 보고 등이지만 정해진 일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
“ 내 직장을 가지고 싶었어요 . 아이들도 크고 가정 내에서의 돌봄은 어느 정도 끝난 거 같아서 지역사회 돌봄 일을 하게 된 거죠 . 이 사업이 2020 년에 시작되었거든요 . 제가 처음 지원해서 활동한 첫 생활지원사였죠 . 그때 나이도 오십이었는데 딱히 할 일을 찾을 수 없더라고요 .
그렇다고 도시로 일을 구하러 갈 수도 없고 . 그런데 마침 이 일을 보니 안정된 일자리라고 생각했어요 . 12 시 반에서 6 시까지 근무하니까 오전에 내 일을 할 수도 있고 .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쓰인다는 게 저에게도 큰 힘이 되고 기분이 좋아요 ” 전경애 씨는 2010 년 익산에서 완주 고산면으로 이주했다 . 아파트에서 뛰는 두 아들에게 늘 ‘ 뛰지마 ’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마침 지인의 추천으로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는 삼우초등학교를 알게 되었고 학교 앞 시골 마을에 집을 지었다 . “ 아이들한테는 이곳이 고향이에요 . 작은 애는 대학생되었고 큰 애는 군인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삼우초 다니면서 너무 좋아했죠 . 지금도 고맙다고 그래요 .
학원도 안 보내고 마음껏 뛰어놀게 해줘서 .
저 역시도 아무 연고도 없이 이곳에 왔는데 그 당시 삼우초 양육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낯선 곳에서 느끼는 어려운 점이 없었죠 .” 전경애 씨 역시 이 동네의 크고 작은 돌봄의 관계망 속에서 튼튼히 뿌리내리며 살아왔기에 , 지금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문을 두드리고 들여다보는 것 완주노인복지센터는 경천 , 고산 , 비봉 , 운주 , 화산 지역을 관할하며 총 36 명의 생활지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 경애 씨는 고산지역의 생활지원사 총 11 명 중 한 명이다 . 경애 씨가 돌보는 어르신은 현재 15 명이다 .
어르신들은 경애 씨를 ‘ 지원사양반 , 관리사 양반 ’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 저희는 주로 혼자 계시는 분들을 주로 찾아다니는 거죠 . 여러 가지 생활 , 정서 지원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고독사를 예방하는 것이에요 .
집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여러 번 보게 되기도 했는데 , 그럴 때 제가 빨리 가서 발견한 게 그나마 다행인 거죠 . 이런 돌봄서비스가 없었다면 더 늦게 발견되었을 수도 있어요 . 돌아가신 분을 갑자기 만나게 되면 순간 당황스럽고 떨리기도 하죠 . 근데 이것이 제 직업이잖아요 .
교육받은 대로 매뉴얼 대로 침착하게 대응합니다 . 어르신이 전화도 안 받고 댁을 찾아갔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마음이 쿵 하죠 . 그래서 전화가 안 될 때면 밤이라도 찾아가봐야 해요 . 어르신이 전화를 두고 밭에 나가셨거나 ,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집에 계시겠지 하고 넘기면 안 돼요 .
직접 가서 문을 두드리고 들여다봐야 해요 . 2020 년에 맞춤돌봄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매뉴얼은 요양보호시설에서 따온 거이기 때문에 현장이랑 안 맞더라고요 . 5 년 동안 저희가 현장에서 겪는 상황들이 그대로 매뉴얼로 반영되고 계속 구축해나가고 있는거에요 .
진짜 맞출돌봄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 생활지원사의 일은 그보다 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밭에서 일하고 계신 어르신이 있으면 밭일도 함께 돕고 , 곶감 철에는 곁에 앉아 감을 깎기도 한다 .
때로는 괴팍한 어르신이나 억지를 부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 대부분의 경우 존중하며 이야기를 들어드린다고 한다 . 경애 씨는 그분들이 살아온 거친 세월을 이해한다 .
가난과 전쟁을 겪으며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나이 들어버린 어르신들의 곁에 조용히 앉아 끈질기게 듣다 보면 , 닫혀 있던 마음도 서서히 열리게 된다 . “ 나는 돌봄이 재미있어요 . 일단은 어르신들이 순수해요 . 평생 남한테 요구하며 살아오지 않아서 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을 쑥스러워하세요 .
저는 그런 모습이 귀엽고 좋아요 .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편하게 이야기해요 . 관계가 좋아지는 거죠 . 저희가 일방적으로 어른신들에게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어르신들에게 많이 배워요 .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 당신 살아온 이야기 , 경험들 .
생활의 지혜같은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삶에서 많이 배워요 .” 경애 씨는 몇 해 전에 자동차를 바꾸면서 특별히 빨간색 차를 골랐다고 한다 . 어르신들이 멀리서도 자신이 오는 걸 알아볼 수 있도록 . 오늘도 경애 씨는 달려간다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