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처럼 끈질긴 내 인생 동상면 검태마을 이순 가끔씩 상상해본다 . 야트막한 산 아래 볕 잘 드는 마을에 겸손한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이다 . 삶의 풍경을 연재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내가 꿈꾸는 그런 삶과 사람들과 집들을 만나게 된다 .
하지만 이순 (65 세 ) 씨가 살고 있는 동상면 신월리 검태마을은 좀 차원이 다르다 .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검태마을은 연석산과 운장산을 잇는 마루금 한가운데 깊은 골짜기를 따라 자리 잡은 그야말로 산골마을이다 .
산 좋고 물 좋아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광이지만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다 . 개 열한마리와 길고양이 7~8마리가 머무는 곳 “ 어쩌면 운명적으로 이 마을을 오게 된 것 같아요 .
서울에서 살 때 이유도 없이 마르고 헛구역질이 나고 그랬어요 .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데요 . 의사가 시골에 내려가서 장작불 떼고 살아보라고 권유를 했죠 . 처음 들어올 때 동생 트럭을 타고 왔어요 . 그때는 이 길이 전부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였어요 .
도시 살던 사람이 생전 처음 그런 길에 들어서면 무서울 법도 한데 저는 이상하게 굉장히 즐거웠어요 . 남편은 처음에는 여기 못산다고 엄청 힘들어 했어요 . 근데 나는 여기가 너무 좋은 거에요 .
6 개월만 살다가 몸이 좋아지면 다시 올라가자 그랬는데 , 내려온 순간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 1987 년 11 월 10 일 , 덜컹거리는 트럭에 몸을 싣고 도착한 검태마을 . 몸이 서서히 좋아지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
지천에 널린 것이 풀인데 어떤 풀을 먹어야 할지 머뭇거릴 때 동네 할머니들이 산과 들의 이로운 풀들을 알려주셨다 . 채취하고 직접 조리해서 먹어보며 산야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 사실 이순씨는 완주군 지역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
마을이장 , 완주군 부녀회장 총무 , 검태회관 대표를 비롯해 많은 경력이 있지만 산야초를 활용한 자연음식 분야에서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서른셋에 이 곳에 터를 잡고 어느덧 32 년차 귀농귀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순씨에게도 객지사람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
“ 동네 사람들이 나무한다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 우리집으로 불러서 부침개 부치고 막걸리 대접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동네사람들하고 유대관계를 쌓아갔죠 . 그래도 객지사람 이야기를 들었어요 . 하지만 꿋꿋하게 어른 보면 인사하고 음식대접하면서 살았어요 .
그러다보니 내가 이 마을에서 여자이장 1 호를 했어요 . 동상초등학교 자모회장도 했고 완주군 부녀회장 총무까지 맡아서 했어요 . 객지 사람치곤 많을 일을 했죠 . 여기 버스 안 들어오던 시절에는 남편 트럭이 동네 버스 노릇을 했지요 .
저도 가진 것 없지만 상대방 배려하고 베푸는 것 그런 건 우리 친정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 . 우리 친정엄마는 거지가 밥 얻으려고 집에 오면 거실에 들어오게 해서 앉혀서 밥 차려 먹이고 바가지에도 밥 담아서 보내는 사람이었어요 .
친정엄마의 그런 점이 저에게 대물림 된 거 같아요 .” 처음부터 장사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
91 년 어느 날인가 등산객 한 분이 집에 들러서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수 같은 거라도 팔아볼 생각 없냐고 권유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 몇 명을 더 데리고 다시 찾아와서 맛본 닭백숙이 맛있다는 말에 대출을 받아 조립식 건물을 짓고 검태회관이라는 음식점허가를 받아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
음식점 한 켠에는 이순씨가 수시로 들고나는 작업실이 하나 있다 . ‘ 풀꽃향기 가득한 집 검태골 ’ 이라는 목간판이 걸려 있는 이 작업실에서 이순씨는 자연이 주는 재료들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 .
“ 장사를 하려고 보니까 손님들이 상시로 오는 게 아니어서 반찬 종류를 언제든 내놓을 있는 걸 고민하다가 장아찌 종류를 개발하게 됐어요 . 장아찌 반찬 내놓고 장 담가서 된장찌개 끓여 내놓으면 손님들이 너무 맛있다고 반찬 이것저것 다 싸달라고 했어요 .
그러면서 이 장아찌 반찬들을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 마을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알려준 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독학을 해서 산야초 연구를 했어요 . 다 먹을 수 있는 게 풀이더라고요 . 산야초 장아찌 200 종류를 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현재는 50~60 가지 정도 담았어요 .
저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하나 있어요 . 기분이 나쁜 날에는 음식을 절대 안 만들어요 . 손님이 음식을 주문했다고 해도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안 만들어요 . 왜냐하면 내가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은데 정성을 다해 만들 수 없는 거죠 .
내가 마음이 선하고 착한 마음을 가져야 만든 음식이 귀해지고 드셨을 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 이순씨의 작업실.
겨울에는 늘 이곳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연구하고 만들어본다 이런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센 특별한 기질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 하지만 편견이었다 . 그들은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 . 이순씨도 그랬다 .
군청이며 농업기술센터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면 어디든 다니며 배우고 관계를 맺었다 . 몸은 산골에 있었지만 블로그에 사진 올리는 것을 배웠고 지금은 휴대폰 하나로 홍보와 마케팅 , 택배업무까지 모두를 처리할 수 있는 유능한 사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 “2005 년도에 블로그를 배우게 됐어요 .
교육받으러 간 첫날 ‘ 오른쪽 클릭 , 왼쪽 클릭 , 커서 ’ 이걸 알려주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온 거야 . 손님이 갑자기 20 명이 온다고요 . 장사가 중요하니까 얼른 집으로 갔죠 . 컴퓨터라고 배운 것은 딱 그 세 가지였어요 .
그래도 독학으로 익혀서 블로그 만들고 사진 올리고 글 쓰는 것 한 거지요 . 완주군청에서 진행한 제 1 회 음식 품평회에서 망개잎 장아찌하고 망애잎 백숙으로 1 등상을 받았죠 . 아무튼 새로운 산야초 장아찌로 입소문이 나면서 스님들에게 장아찌 담그는 교육도 했어요 .
현재는 ‘ 검태골 ’ 이라는 이름으로 카카오스토리 활동을 통해 제가 만든 음식류 , 한과류 등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어요 . 핸드폰 하나가 내 사업채고 내 가게야 .
이거 하나로 다 하는 거죠 .” 이순씨가 직접 촬영해서 sns에 홍보하는 먹거리 어제가 입춘이었지만 아직도 엄동설한인 검태마을의 이순씨는 철모르고 바쁘기만 하다 .
봄에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여름에는 물놀이 손님 음식장사 , 가을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나물 뜯어서 삶아 말려 묵나물을 만들면서 사계절을 보낸다 . 이순씨 남편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농사일을 맡아주고 이순씨가 하는 일을 묵묵히 도와주신다고 한다 .
이 좋아하는 일을 여든 살까지 오래오래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겠다고 한다 . 그래야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 . “ 나는 질경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요 . 제가 여기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 그 고생은 다 이야기 못하죠 .
그런데 이 질경이라는 나물이 수레바퀴가 밟고 지나가도 결코 생명력을 잃지 않는 끈질긴 나물이라고 하더라구요 . 질경이나물이 너무 좋아요 . 꼭 내 인생 같아서.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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