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로 실어 나르는 빛나는 벽돌인생 삼례건재 김복숙 여자라서 못할 일 없는 것이다 그녀는 이 투박한 현장에서 삶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편견은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른 방식의 생각을 접하지 않고서는 웬만해서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 .
그동안 살아오면서 벽돌이나 시멘트 , 모래와 같은 건축재료를 취급하는 ‘ 건재사 ’ 를 드나들 일은 별로 없었다 . 드나드는 것은 고사하고 도심 외곽에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런 저런 건재사들의 삭막한 풍경을 눈여겨 본적도 거의 없다 . 나의 편견 속에서 그곳은 남자들의 세계였다 .
건설현장의 거칠고 단단한 남자들이 벽돌과 모래와 시멘트를 커다란 장비를 움직이며 사고파는 흙먼지 가득한 미지의 세상이었다 .
굉음소리 요란한 지게차와 포크레인 , 스키로더 같은 중장비를 능숙하게 조작하며 높게 쌓여 있는 회색벽돌 사이를 누비는 삼례건재의 김복숙씨 (65 세 ) 는 나의 편견을 없어지게 했고 그 없어진 만큼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
한 달에 한 번 다른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볼 수 없었을 새로운 풍경을 이번에도 다시 만난 것이다 . 막둥이 아들 안고 벽돌 나르던 때 “32 년 전에 삼례로 들어와 마천에 살았는데 엿을 만들어 팔았어 .
지금도 노인양반들은 벽돌 파는 데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엿장수네 집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들어 . 그때 내가 집에서 다 만들었어 . 우리 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새벽에 깨워서 졸면서 엿을 만들었지 . 근처 식당에서 식당일도 하고 .
우리 아저씨도 밑천이 없으니까 벽돌이나 흙 , 공사 자재들 배달을 시작한 거지 . 그러다 우리 가게 낸 것은 20 년 전이고 .” 삽으로 흙을 퍼나르는 김복숙씨. 김복숙씨가 능숙하게 주문을 체크하고 있다. 김복숙씨는 순창이 고향이지만 사탕공장을 하던 전주의 외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
사탕 포장하는 일을 거들다가 사탕도매업을 하던 남편을 만났다 . 청춘남녀의 열애였다 . 전주 서학동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남편과 함께 주류 유통업을 하며 살림을 꾸려나갔다 . 하지만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삼례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 단단한 손길로 벽들을 옮기고 있다.
무거운 벽돌도 그녀에겐 문제가 없다. “ 삼례 근처에 벽돌공장이 있었어 . 거기서 벽돌 떼다가 배달을 많이 했지 . 그때만 해도 벽돌장사가 잘 되던 때였어 . 삼례 공장만으로는 물량이 딸리니까 김제까지 가서 벽돌 떼어오고 그랬지 . 그때는 지게차가 없으니까 벽돌을 일일이 손으로 다 내렸어 .
1 시간 하면 3~4 천장 금방 내려 . 우리 아저씨랑 나랑 둘이서 호흡이 잘 맞아 . 그때는 또 한창 나이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일을 했지 .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해 . 아유 참말로 징해 . 갓난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일했어 .
막내아들을 낳고 일을 해야 하는데 맡길 데는 없으니까 트럭 가운데에 태우고 같이 배달 일을 다녔지 . 지금도 그때 일이 생생해 .” 반말하지 마세요 . 아저씨 김복숙씨의 팔뚝은 굵다 . 술 박스 나르고 벽돌을 나르느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를 외형적이고 괄괄하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이 돈 벌어다 주면 애들 밥해주고 간식해서 먹이고 그렇게 숲 속 조용한 마을에서 살고 싶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삼례에서 말띠 띠동갑들이 모임을 하는데 하나 같이 가만히 앉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 그렇게 말띠 여자들끼리 함께 모여서 서로의 바쁘고 고단한 삶을 격려해 가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궁금했다 .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는 것이지만 어떻게 이 무겁고 투박한 장비들을 다루게 됐고 거칠고 무뚝뚝한 남자들 투성이인 이곳에서 삶을 꾸려갈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물어봤다 . “ 지게차 , 포크레인 , 스키로더는 아저씨 하는 거 어깨 너머로 보면서 배웠어 .
우리가게에서 파는 것들이 건축자재들이다보니까 아무래도 거친 아저씨들이 많이 오지 . 그런데 나는 무서운 적이 별로 없어 . 그냥 나한테 대하는 대로 똑같이 대하면 마음이 편하더라고 . 말이 반토막짜리가 많아 . 싸래기 토막을 반토막을 삶아 먹었나 그래 버리 던지 , 반토막 대학 나오셨쎄요 ?
웃으면서 톡 싸버리지 .”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한참 건설경기가 좋았던 시절에는 벽돌장사가 제법 잘 됐다고 한다 . 최근 들어서는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못자리 흙이나 딸기농사에 쓰는 마사토도 취급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꾸준히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들이 있다 .
단골손님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부르면 작은 트럭에 모래며 벽돌들을 싣고 장수 , 진안 , 김제까지도 달려간다 . 70 살 까지는 장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 물론 70 살이 넘어 가게를 정리하면 남편과 함께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며 살아야겠다는 소박한 꿈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
“ 장사를 하려면 남겨먹어야 하니까 어떤 때는 거짓말도 좀 섞어가면서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걸 못해 . 10 원 받을 것을 20 원 , 30 원 받으려면 이상하잖아 .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 . 그러니까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믿고 사는 단골들이 많지 . 우리 집 아저씨가 칠십까지는 장사해야 한디야 .
나는 그만 하고 싶은데 . 근데 생각해보면 난 이것이 체질에 맞나봐 . 재미있어 .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온 것이 참 재미있었네 . 저승 갈 때 물어본다잖아 . 이승에서 뭐하고 왔냐고 . 나는 벽돌만 나르다 왔다고 하게 생겼어 .
그래도 바깥양반이랑 나랑 몸 아픈데 없고 자식들 시집보내고 좋은 직장 다니고 , 돈 필요해서 어디 손 내밀지 않아도 되고 . 이 정도면 잘 살았지 싶어 . 돈이 많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어 . 싸움밖에 더 해 .
그러니까 이렇게 살다가 칠십 넘어서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살면 좋겠네 .” <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 나는 안다 .
내 성벽의 무수한 돌들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 또 안다 . 모든 순간이 번쩍 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 알겠다 .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소설가 성석제의 글이 떠올랐다 .
그녀가 쌓아 올이고 실어 날랐던 수많은 벽돌들이 그녀의 인생이었음을 . 그리고 생각했다 . 그 수많은 벽돌들 중에서 그녀가 기억하는 반짝하고 빛나는 황금빛 벽돌들이 몇 개쯤은 섞여있다는 것을 . 주문서가 붙은 복숙씨의 사무실 내부.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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