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고개, 영감잃은 눈물고개도 함께 넘었으니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청려장(명아주 지팡이 )이 되었구나 아흔번째 생일맞은 한마을 친구 장복례-신덕희 1927 년 .
정지용이 시 ‘ 향수 ’ 를 발표하고 ,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오빠 송해 할아버지가 태어나던 해 , 장복례 할머니와 신덕희 할머니도 태어나셨다 . 두 분은 우리 나이로 올해 90 살 . 100 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도 90 세의 어르신을 만나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
완주군 화정리 명석마을에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90 세 어르신을 모시게 되었다 . 그 것도 두 분이나 . 명석마을 사람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여 조촐한 생일잔치를 했다고 한다 . 신덕희 할머니는 나이 먹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며 쑥스러워 하신다 .
“ 그래도 며느리가 꽃다발 사와서 나 하나 주고 , 저 친구 ( 장복례 할머니 ) 도 주드만 . 나는 보답으로 노래 한 소절 부르고 저 친구는 춤추고 그랬지 ” 조선시대에 임금이 80 살이 되는 노인에게 선물을 했다는 청려장이 생각났다 . 청려장은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다 .
본초강목 ( 本草綱目 ) 에는 명아주 지팡이인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고 , 신경통에 좋다고 기술돼 있으며 , 나무보다 가볍고 강해 최고의 명품 지팡이로 알려져 있다 . 청려장은 효자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자 , 노인이 살아온 풍부한 삶에 대한 경의이자 예우였다 .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우린 어르신들에게 소홀해져 간다 .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테지만 삶이 복잡해지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를 살필 겨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 그럴 때 일수록 주변의 어르신에게 청려장을 선물했던 전통과 마음을 생각한다 .
명석마을 사람들이 90 세가 되신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고기반찬을 해서 생일상을 차려드린 마음이 따뜻하고 곱다 . 신덕희 할머니와 장복례 할머니는 나이가 무슨 자랑이냐며 연신 손사래를 치신다 . 신덕희 할머니의 이정희 넷째 며느리가 찍은 사진.
명석마을 회관에서 구순이 되신 할머니 두분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어려운 시 절 함께 보내야 친구지 화정리가 고향인 장복례 할머니는 16 살에 이 마을로 시집오셨고 화산면이 고향인 신덕희 할머니는 18 살에 화산 용수마을로 시집가셨다 . 두 할머니는 비슷한 점이 많다 .
장 할머니는 6 남매를 두셨고 신 할머니는 8 남매를 두셨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기도 비슷하다 . 장복례 - “ 나 64 살 때 , 할아버지는 66 살에 갔지 . 지비는 언제 갔어 ?” 신덕희 - “ 우리 집 양반은 69 살에 갔어 .
나는 그때 68 살이었네 .” 장복례 - “ 우리 집 양반이랑 이 집 양반도 친한 친구였어 . 그러니까 이 집 양반이 우리 집 양반 묘소에 꼭 담배를 꽂아 놓고 가셨지 . 논에 갔다오시다가도 꼭 우리 집 양반 묘소에 들러 담배를 꽂아 놓고 가곤 했지 .
나도 밭일 하다가 연기가 폴폴 나서 가보면 담배가 타고 있어 . 그럼 묘소에 대고 이야기 하지 . ‘ 당신 친구가 담배 잘 피워 놓고 갔네 .’ 하고 .” 지금에야 장례식장에서 모든 절차를 알아서 해주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마을의 일이였다 .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평생을 살다가 떠나는 삶은 어떠했을까 . 열일 제쳐 두고 달려온 이웃들이 장례음식을 차리고 , 상여를 매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으로 오르던 이들도 이웃들이었다 . 그 가깝고 내밀한 관계를 젊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할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할머니 두 분은 이 모든 걸 함께 했다 . 시간은 서로를 닮게 한다. 이 마을에서 만나 나이듦을 함께 하는 두 할머니는 닮지 않은 듯, 닮으셨다. 동갑내기 마을 친구 , 우리 이제 망구땡 하 자 .
신덕희 할머니는 나이 50 세가 지나서 이 마을로 이사를 오셨다고 한다 . “ 친척한테 보증을 잘못 해줘서 논도 잡혀버리고 집도 팔아버리고 , 그러니 재산이 뭐가 있었 간디 . 소 한 마리 있는 놈 끌고 어우리로 처음 이사를 왔지 . 어우리에서 살적에 힘들게 살았지 . 자식은 많고 몸은 아프고 .
그래도 여기 명석마을 와서 잘 살았지 . 집도 짓고 , 시방은 자식이 많으니까 좋아 .” 낯선 마을에 터를 잡고 적응해 가는데 큰 위안이 되었을 친구 . 동갑내기 장복례 할머니와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아 이물 없이 지낸지가 40 년이 되어간다 .
둘이 무슨 계기로 친구가 되었는지 , 놀 때는 무얼 하며 놀았는지 , 요즘 젊은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노는 기준으로 질문한 내가 많이 어리석었다는 걸 금새 깨닫는다 . 마을에서 길쌈을 제일 잘 하셨다는 장복례 할머니의 우문현답 .
놀고 즐기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 밤낮없이 일만 하던 시절이 가고 서방도 보내고 나니 친구가 남더라는 . “ 그때는 길쌈매고 삼 삶고 뭐 그러느라 놀 시간이 있었간디 . 지금처럼 물이 나와 ? 저기 한지 시암 가서 물 길어다가 밥 짓고 . 전기밥솥이 있어 ? 아궁이에 불 떼서 가마솥 올리고 .
식구라고는 어찌 많은가 15 명 삼시세끼 밥 해먹이고 수랑뜰 시암 가서 빨래하고 . 아낙들은 놀 겨를이 없었어 . 근데 지금은 망구 땡이여 .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 밥은 전기밥솥이 해주고 . 세상 망구 땡이지 . 뭔 걱정이여 .” 망구땡 . 참 적절한 말 아닌가 .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마을의 큰 어르신이 되어 마을회관에서 식사대접도 받고 뜨듯한 아랫목에서 오침을 청하기도 하고 가끔은 화투짝도 쥐고 , 할머니 두 분은 이렇게 호강하는 요즘이 그야말로 망구땡이라고 하신다 . 완주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
70 세 ~80 세 어르신들은 여전히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하시고 90 세 되신 어르신들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신다 . 거목 같은 손과 굽은 허리로 그 분들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 마을회관은 두 할머니의 놀이터가 된다.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두 할머니의 뒷모습도 닮았다.
올 듯 안 올 듯 , 하지만 기어이 봄은 올 테다 . 요즘 들녁을 자세히 살피면 구부정하게 앉아 고물고물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분명 만날 수 있다 .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 기억보관창고인 어르신들과 볕 좋은 어느 곳에 앉아 새참거리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
어르신들의 묵은 이야기들이 젊은이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 젊은이가 별스럽게 군다고 , 옛이야기를 물어 뭐하냐며 군소리는 좀 듣겠지 . 하지만 못이기는 척 어르신들은 오랜 기억들을 젊은이에게 나눠 줄 것이다 .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마을의 젊은이에게 둘러싸여 옛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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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