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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7.03.06

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7.03.06 16:46 조회 1,7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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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 . 완주시니어클럽 친환경영농사업단 팀장 김성진씨 농사짓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뭐가 있을까 . 밭에 나가는 어르신의 뒷짐 진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하다못해 농사에 ‘ 농 ’ 자도 모르는 우리 집에도 있는 것이다 .

바로 ‘ 호미 .’ 호미 하나로 자식들 굶기지는 않았다는 할머니부터 굽은 허리지만 호미만 들었다하면 밭의 여전사가 되는 할머니까지 . 호미에 얽힌 살아있는 전설은 무궁무진하다 . 호미질을 할 때 흙과 부딪치는 쇳소리의 진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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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 고요한 밭에 나가 돌을 고르고 풀을 매는 호미소리에 반해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이가 있다 . 완주시니어클럽에서 십년 째 일하고 있는 김성진 (44) 씨 .

현재 친환경영농사업단 팀장으로 완주지역의 어르신들과 쌈채소 , 양파 , 황토고구마 , 감자 , 건고추 , 김장배추 등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 “ 초기에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이서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고구마농사를 지었는데 , 그때 호미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

풀을 매는 슥슥슥 호미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같이 듣기 좋았어요 . 이것이 자연의 소리고 살아가는 소리구나 , 그때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소리였지만 깨닫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 호맹이 소리에 농사를 결심하다 枯 박완서 작가는 말년에 ‘ 호미 ’ 라는 책을 통해 젊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작고 소박한 호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청년들에게는 아무래도 삽이나 곡괭이가 더 잘 어울린다 .

힘껏 내리치고 퍼내는 것 , 자신의 글쓰기도 그러했다고 회고한다 . 깊이 파고 들어가는 글쓰기를 지나 노인이 된 작가의 글쓰기는 ‘ 호미 ’ 와도 같았다 . 삽이나 곡괭이보다 많을 일을 하기 어렵고 속도는 느리지만 허리를 숙이고 땅을 가까이 하는 호미로 농사짓는 즐거움 .

성진씨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땅에서 농사짓는 즐거움을 알게 된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다 . 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농사지은 10 년의 경험도 있지만 그는 5 대째 상관에서 살고 있는 완주 토박이다 . “ 상관 정좌마을에 살고 있어요 . 선대 때부터 산판으로 해서 먹고 살았대요 .

나무해서 땔감장사를 하셨던 거죠 . 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짓고 대대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셨던 거죠 .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농업에 관심이 많았죠 .

일손도우면서 자랐으니까요 .”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짐작하건데 , 조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농촌과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 할아버지께서 사회복지 일을 하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일제 때 해방되고 전쟁나면서 마을에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을 하셨다고 해요 . 물론 복지 개념이 없을 때이지요 . 선대 때부터 하던 일을 어려서부터 배웠던 거죠 .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사회복지를 전공하기도 했구요 .

대학원에서 농촌복지를 공부했지요 .” 이성진 씨가 시니어클럽 작업장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젊은이와 어르신이 함께 살아가는 것 집에서 농사일 돕다가 바로 농촌복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 젊은 시절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해본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했더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냈다 .

이십대에 대한주택공사에 취직해 사무일부터 시설관리 일을 했지만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장에서 탱처리 하는 속옷들을 가지고 전국을 떠돌며 노점상으로 살기도 했다 . 삼십대에는 웨스턴 바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 그의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

“ 제가 바텐더를 왜 좋아했냐면 손님들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매력적이더라구요 . 바텐더도 일종의 카운슬러고 그것이 사회복지 일 아닌가요 ?^^” 사회복지 전공으로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는 책과 현장을 함께 병행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을 원했다 .

지인의 소개로 시니어클럽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 현장의 오랜 경험으로 농촌 복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견고했다 . “ 떠나는 농촌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같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농촌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상생하는 농촌이 되었으면 하는데 , 그걸 지금 계획하고 있어요 . ‘ 집합영농 ’ 이라는 것으로 말이죠 . 뭐든지 혼자 하기는 힘들어요 . 함께 농사를 짓는 거죠 . 지금 봉산마을에서 집합영농 모델을 만들려고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

그 마을 어르신으로 4~5 명 팀을 만들었어요 . 그럼 젊은이들이 함께 돕고 판로를 책임지는 거죠 .” 젊은이끼리 , 어른신끼리 , 귀농인끼리 , 토착민끼리가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이며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어르신의 평생농사 노하우를 젊은이가 배워 나가고 토착민들이 잘 아는 지역 고유의 자연성질에 대해 귀농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 .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젖어 들어가 듯 함께 물드는 것 .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해서 말했다 .

김성진씨 역시 십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젖어들 듯 깨닫게 된 것들이라고 한다 . 올해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집단영농으로 잡곡류 농사를 준비 중이다 . 요즘은 돈 되는 특용작물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왜 벼농사를 고집하는 것인지 나는 물었고 돌아오는 그의 답에 부끄러워졌다 .

“ 앞으로도 벼농사는 계속 할거에요 . 없어지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 쌀은 우리의 가장 큰 주식인데 그것을 수입해서 먹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요 . 남는 것 없지만 끝까지 고수하고 싶어요 . 좋은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 여기서 농사짓는 선배들처럼 늙어가고 싶어요 .

주름살도 많고 손도 투박한데 웃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아요 . 찌푸린 사람 없이 . 그런 농부로 늙어가고 싶어요 .” 여전히 젊은 그는 젖어들 듯 농사선배들에게 다가가 친환경 농사 이야기를 슬쩍 해볼 것이다 .

미친놈이라 욕해도 웃어넘기고 , 잊을 만하면 ‘ 친환경농사 해보니까 됩디다 .’ 라며 너스레를 떨 것이다 . 그 선배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순박하게 늙어 갈 것이다 .

트랙터와 곡괭이와 삽에 익숙하던 젊은이는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노인이 되어 , 뒷짐 쥔 손에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나가 호미소리를 내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 /글사진 =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순박하게 웃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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