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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9.01.09

세모, 네모,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9.01.09 15:51 조회 1,5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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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 네모 ,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 - 소양면 고향떡방앗간 이정순씨 준서는 정순씨의 둘째 아들이다 . 준서를 처음 만난 것은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막 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9 월이었다 .

가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서 소양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 영상의 제목도 스토리도 아이들과 함께 정했고 아이들이 출연도 하고 촬영도 직접해낸 멋진 작업이었다 . 며칠 전 학교 축제 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 나를 억압하는 것들아 !

바깥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은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정순씨.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사는 것이 최고 (1)
바깥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은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 정순씨.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사는 것이 최고 (1)

Beat IT!> 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상영했다 . 영상 첫머리에 미끄럼틀 구멍에서 빠져나오며 화면을 가득 메웠던 개구쟁이가 바로 준서다 . 준서는 엄마가 하는 떡 방앗간 이야기를 자주 했다 .

준서가 들려주는 쇠머리찰떡 , 바람떡 , 수수팥떡 이야기 덕분에 나는 2018 년 12 월 , 그러니까 올해의 마지막 삶의 풍경의 주인공 정순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 정순씨의 고향은 이곳 소양이다 . 송광사 앞 동네에서 일곱 남매의 여섯 째 딸로 태어나서 자랐다 .

어린 시절 기억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한지공장에 얽힌 것들이 많다 . 그 당시 소양은 창과 문에 붙이는 창호지 , 바닥장판으로 사용하는 한지 등을 생산하는 한지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 타지에서 일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정순씨가 다니던 송광초등학교에도 오백명이 넘는 아이들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

학교 끝나면 한지공장으로 와서 일손을 돕던 여섯 째 딸이었다 . 그 후 싸고 간편한 나일론 장판과 샷시문들이 등장하면서 한지공장일은 주춤해지고 이정순씨 댁의 가업이자 전통기술이 사라져갔다 . 한지공장을 정리하신 정순씨의 아버지는 나무 농장을 시작하셨다 . 정순씨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배웠다 .

나무 관리하는 일 , 일꾼들 밥해 먹이는 일들을 도왔다 . 스무 살 되던 해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있던 언니들을 따라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 서울에선 십년을 살았다고 한다 . 멋지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었다고 한다 . 하지만 자수성가해서 자신이 계획한 멋진 삶을 살기에는 현실이 팍팍했다 . 드라마 < 아들과 딸 > 의 후남이처럼 열심히 일해서 모은 목돈은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보내졌다 . 백화점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을 했다 .

몸이 고된 건 문제가 아니었다 .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은 마음은 빼곡한 도시 어딘가를 헛헛하게 떠다녔다 . 서울 생활 내내 고향 산천이 그리웠고 서른이 되던 해에 다시 고향 소양으로 내려와 자연인처럼 살리라 다짐했는데 , 인연이란 참 묘하다 . 지금 아이들 아빠 윤상기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

“ 우리 아저씨가 지금 쉰 살 . 나보다 다섯 살 많아요 . 금은방에 뭘 사러갔는데 우리 애들 아빠가 거기 주인이었어요 . 그 즈음에 그 사람 자동차가 눈밭에 미끄러져서 차가 없었어요 . 나한테 어디까지 태워달라고 그래서 몇 번 태워다주고 그랬는데 그러다가 연애를 했지요 .

시골에서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한다니 동네가 떠들썩했지요 . 집에서도 별 반대 없었어요 . 결혼 안할 줄 알았는데 네가 한다니까 그래 혀라 , 그랬지요 . 결혼하고 남편이 하던 금은방 하다가 우리 친정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조경업을 물려받아서 저희가 운영했죠 . 우리 아버지가 좋은 분이셨어요 .

아버지가 맺어둔 좋은 관계들 덕분에 주변 어르신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복을 많이 받은 거죠 . 그러다 5 년 전 쯤에 조경업계에 위기가 있었어요 . 건설업계가 위축되면서 저희도 힘이 들었죠 . 별일 다했어요 . 그런 건 말해 뭐해 . 먹고 살려고 3 년 전에 방앗간을 시작했지요 .

그래도 아버지한테 배운 조경일은 놓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소양조경수생산자영농법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정순씨의 방앗간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

들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서리태와 메주콩을 볶아 가루를 내고 쌀을 빻아 떡을 져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준서 같은 개구쟁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궁금했다 . “ 큰 아이 준우는 어디가도 예쁘다고 그랬어요 . 이렇게 예쁘고 얌전한 애가 어디 있냐고 . 근데 우리 작은 애 준서는 특이해요 .

걔는 팔랑개비 같고 내 뜻대로 안 키워지는 거에요 . 근데 부모가 어른이라고 성숙한 건 아니거든요 . 우리 작은 애를 키우면서 많이 느꼈어요 . 작은 애도 큰 애처럼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얘네는 다른 아이잖아 . 큰 애는 점잖아요 . 그런데 우리 작은 애는 흥이 많아요 .

음악이 나오면 막 춤을 추고 . 흥이 있는 거죠 . 준서는 준서 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 우리 준서 덕에 제가 도를 닦았어요 .” 고향떡방앗간 전경. 정순씨는 스스로를 좋은 엄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서 아이들을 세심하게 돌보지도 못하고 그냥 방목하는 엄마라고 . 하지만 정순씨는 나무의 묘목을 키워내며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 어릴 때는 씨앗으로 발아를 시켜서 풀도 뽑아내고 병충해도 막아준다 .

어느 정도 나무가 크면 제 각각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 . 그래서 아이도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틀은 잡아준다 .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되 기본 틀은 내가 잡아준다 . 그 대신 너희는 각자의 개성대로 사는 거다 . 이것이 바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정순씨의 전략이고 철학인 것이다 .

“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내가 전공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이루고 싶은 꿈대로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 완벽하지도 않는데 완벽한 척 하며 살았던 거 같아요 . 이런 생각을 아이들을 키우다 느낀 거죠 . 아이들은 다 다른 거 같아요 .

획일적으로 교육시켜서 모두가 똑같아지라고 학교에 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 저마다 개성대로 살아가되 그 시기에 배워야 할 것을 나이에 맞게 배우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 준우 , 준서 , 서현이한테 가끔씩 말해줘요 . 너는 세모야 , 너는 네모고 너는 동그라미다 .

다 모양이 다른 거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요 .” 오랜 단골이 갖고 온 물건을 살펴보는 정순 씨. 갓 볶아나온 검정콩과 생 참깨. 정순씨의 봄 , 여름 , 가을은 여전히 조경일로 바쁘다 .

남편과 함께 나무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 노지에 뿌려서 묘목을 키워내고 그렇게 일 년 동안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내다 팔 수 있다 . 발아 , 삽목 , 접붙이기 같은 기술은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없는 이 지역 고유의 기술이라고 한다 .

그리고 찬바람 부는 늦가을부터 겨울 내내 정순씨는 방앗간 일로 또 바쁘다 . 오랜 이웃들이 농사지은 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쌀을 빻아 떡을 쪄내며 어지간한 집 대소사도 이제는 훤하게 꿸 수 있게 됐다 .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정순씨는 집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스케줄표를 그려놓고 아이들에게 각자의 스케줄을 스스로 적어놓으라고 한다 . 세모와 네모 , 동그라미처럼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삼남매는 그렇게 정순씨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

어지간한 소재지마다 있을법한 ‘ 고향 떡 방앗간 ’ 이라는 이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 2018 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 월의 끄트머리에서 고향의 구수한 방앗간에 다녀온 나는 내년의 복을 듬뿍 받아낸 기분이다 . 모두들 , 해피 뉴 이어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세모, 네모,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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