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 ? - 화정마을 김상이씨 이야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곤충의 무게를 모두 더하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무게보다 무겁다고 하는데 이 곤충은 무엇일까 ? 자신의 몸 보다 수십 배 큰 것들도 번쩍 들어 올리는 이 곤충은 무엇일까 ?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세 명에게 이런 퀴즈를 냈고 그들은 입을 모아 ‘ 개미 ’ 라고 외쳤다 . 화정마을에서 만난 김상이씨 (70 세 ) 를 떠올리면 개미가 생각난다 . 작은 체구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 .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땅을 마주하며 살아온 삶이다 .
특별난 재주가 없으니 평생 땅 파먹고 살았다는 상이씨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으면서 어떻게 웃음이 그리 화사한지 모르겠다 . 십년 째 마을 부녀회장일을 하고 있는 김상이씨는 집에서 몇 걸음 안 떨어진 마을회관을 수시로 들락날락 거린다 .
23 살 때 진안 부귀면 정수암 마을에서 시집온 상이씨에게 동네 형님들은 낯선 일도 알려주고 술도 알려주고 노래도 알려줬다 . 그 형님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지만 그 화사한 웃음만은 그대로 일 것 같다 . “ 고향에서 먹고 살기 곤란해서 배곯아감선 누에를 키웠었지 . 우리 친정은 잘 못살았어 .
7 남매 중에 내가 제일 맏이야 . 그래서 더 고생했지 . 엄마랑 아버지는 나가서 일해야 하고 동생들 많으니까 내가 보살펴야 하고 . 먹고 살기 곤란해서 나만 학교를 못 가르쳤어요 , 나만 !
그래서 눈 봉사야 .” 해마다 채종해서 심고 있는 목화 느닷없는 중신으로 낯선 마을로 시집왔을 때 이 곳 화정마을은 온통 목화밭이었다고 한다 . 목화 키워서 어디 내다 판 것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옷 해 입고 솜이불 만들어 덮느라 심었던 목화들이었을 테다 .
지금은 목화밭이 다 사라졌지만 그때 키웠던 목화씨를 채종해 두었다가 해마다 심고 씨를 받고 다음 해에 또 심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 마당 한쪽 화단에 대대손손 생명이 이어지고 있는 목화가 있다 . 잎과 줄기는 시들고 하얀 솜이 달려있다 . 오래전 유물을 보는 것 같다 .
공룡의 화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이 목화는 심지어 살아있다 . 내년에도 꽃을 피우고 통통한 다래 안에 솜을 가득 품고 있을 것이다 . 딸과 사위들이 십시일반 모아 8년 전에 새로 집을 지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모를 심지 .
그 당시 화정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전기도 늦게 들어오고 상대적으로 빈촌이었다고 한다 . “ 다른 마을은 보가 있었는데 여기는 없었어 . 이것저것 없으니까 오로지 하늘에서 비가 와야 모를 심고 농사를 짓는 데였어 . 하늘만 바라봐 .
그래도 지금은 저기에 보가 만들어져서 나 심고 싶은 대로 심고 그러다보니까 부자 되었지 . 로컬푸드 직매장 생기면서 재미있었지 . 우리는 취만 팔았어 . 그때는 신나게 잘 했어 . 산에서 캐다가 심어 놨다 씨받아서 하우스에서 키우는 거지 .
로컬에 납품하고 완주군 급식으로 나가고 농산물센터에도 내놓고 . 물건 보내면 모질 라서 중간에 가지러 오고 그랬어 . 가지러 오면 또 보내고 . 하루 2~3 백 팔리니까 재미있지 . 야채 팔아서 그 정도 판 거면 진짜 많이 판 거지 . 농사도 올 봄 까지만 하고 취소했어 . 남편 아파서 안할라고 .
나먹을 놈만 하려고 . 그전에는 남편이랑 해서 여력이 되었는데 혼자하려니까 힘들어 .” 울다가 웃다 보니 어느 덧 칠십 그렇게 5~6 년은 참 재미있게 일하고 돈도 많이 모았지만 시나브로 일을 줄여 나갔다 . 평생 일만 했으니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 65 세 무렵에는 병원생활을 오래 하셨다 .
허리 디스크로 수술 하고 퇴원하면 또 일하다가 다시 수술하기를 반복했다 . “ 허리 아파서 119 실려 갈 때 대성통곡했어 . 119 아저씨가 아줌마 그렇게 우는 것이 덜 아프다고 위로를 하는데 나는 아파서 운 게 아니야 . 이것 쪼금 살 거면서 참 아등바등 살았다 , 너무 일만하고 살았는가 ..
억울하기도 하고 . 많이 울었어 . 사정도 없이 울었어 . 병원생활 할 때 우리 딸들이 되게 욕봤어 . 내가 좀 괜찮아지니까 우리 아저씨가 아파서 걱정이지 .” 구급차 안에서 대성통곡 했던 때를 인생 중에 가정 슬펐던 때라고 기억하신다 . 그럼 가장 재미있고 좋았던 때는 언제였는지 물었다 .
그 답변에 나는 기가 차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 김상이씨의 절친 나비 “45 세 때 ! 맘껏 일하고 맘껏 놀고 그러니까 재미있었지 . 내 힘껏 일해도 몸땡이가 안 아프니까 내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놀고 싶으면 몽땅 가서 형님들이 놀고 . 술 먹고 놀았지 .
그때는 훨훨 나는 것 같았지 . 아무 집에나 한티가 모이면 놀았어요 . 노래도 부르고 넘 흉보고 우스매 소리하다가 웃고 울고 그러고 놀지 . 막걸리를 고산 읍내 나가서 통에다 담아서 이고 왔어 . 친구랑 같이 . 마을에서 한참 술 마시다가 술 떨어지면 나랑 친구랑 술통 들고 읍내까지 가는 거야 .
거기다가 막걸리 담아서 마을로 들어오는데 그게 얼마나 무겁겠어 . 그럼 친구랑 오면서 그것을 홀짝 홀짝 먹다보면 반절이나 없어 , 술이 . 마을 도착할 때 쯤 우리 둘이 아주 그냥 취해가지고 웃고 그랬네 .”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땅을 마주할 사람들이다 .
상이씨는 이 동네 형님들이 좋아서 형님들 덕 보고 살았다고 한다 . 못 하는 거 , 모르는 것 알려주고 도와주면서 힘든 마음 알아주는 이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몸 고된 것은 싹 사라지더란다 . 지금도 화정마을회관에서는 유난히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 친구 김점례와 함께.
젊은 시절 읍내에서 막걸리 받아오는 길에 통에 반절을 함께 나눠마셨던 사이 농사일을 줄이면서 다시 한글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 학교 끝나고 선생들이랑 동네 카페에 가서 시커먼 커피를 자주 먹다 보니 느지막이 막역한 친구가 생겼다 . 고산 읍내 ‘ 다락 ’ 카페의 주인장 최은영씨다 .
상이씨의 큰 딸과 비슷한 또래인데 친구 먹기로 했다며 서로 부르는 호칭은 ‘ 상이씨 , 은영씨 ’ 다 . “ 선생님들이랑 커피를 먹으러 갔는데 최은영이가 농사지은 거 물어보고 , 우리네 농사지은 거 사가고 그러다보니 친해지더라고 . 지금은 그냥 동생 같아 . 카페에 갔는데 안보이면 보고 싶고 그래 .
아무튼 귀여운 동생 하나 생겼어 .” 귀여운 친구 하나 생겨서 좋고 , 평생 농작물만 키우다가 좋아하는 꽃 키우며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하다 . 잘 웃고 농담을 좋아하는 상이씨와 친구가 싶다 . 상이씨 우리 친구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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