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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5.06.10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5.06.10 09:27 조회 58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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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나는 아름다운 섬광을 보았다 -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을 휘돌아 가는 길옆에 그가 일군 숲이 있다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일터를 오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와 여름이면 짙은 녹색을 품은 나무들이 늘 좋아 보였다 .

강영희 씨가 직접 가꾼 정원에서 웃고 있다.
강영희 씨가 직접 가꾼 정원에서 웃고 있다.

강영희씨 (1951 년생 ) 는 20 년 전 밭자리였던 이곳에 터를 잡고 빨간 벽돌집을 지었다 . 소나무 , 은행나무 , 감나무 , 단풍나무 , 매실나무 , 벚나무 , 철쭉 , 수국 등이 피어난 강영희씨의 마당은 정원보다는 숲에 가깝다 .

“ 언젠가 시골 가서 살면 내가 심고 싶은 나무 실컷 심고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사 와서 나무를 심기 시작한거에요 . 20 년이 지나니까 숲이 되었어 . 너무 우거져서 좀 베어냈죠 . 우리 집에 없는 나무가 없어 .

울 안에다 큰 나무 심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그냥 심고 싶었던 나무를 실컷 심었어요 .” 정착해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청년 “ 오형제 중에 제가 셋째에요 . 부모님이 이번에는 딸을 낳겠지하고 이름을 지었는데 또 아들을 낳아 버린 거야 . 그래서 내 이름이 ‘ 강영희 ’ 가 된 거지 .

어렸을 때 친구들이 많이 놀렸지 . 1 학년 입학하면 국어시간에 제일 먼저 배우는게 뭐겠어요 ? 영희야 , 철수야 학교가자잖아 .” 강영희 씨는 군산 옥구군 나포면에서 태어나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1 년마다 전학을 다니느라 깨복쟁이 친구가 없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 .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으면 한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 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아 결혼 후 첫째가 태어나자 마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3~5 배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

1 년 동안 일한 돈을 모아 전주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 그 모든 것이 사막에서 흘린 땀의 대가였다 . 하지만 그 뿌듯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 1997 년 겨울 , 눈 대신 차가운 뉴스가 쏟아졌다 .

어머니 돌아가신 뒤 밭을 일구고 숲을 가꾸다 강영희 씨는 그 당시 과장직급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지만 고민 끝에 조기명퇴를 선택했다 . 지인의 대출 보증을 섰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 보증금을 대신 갚아야 했다 .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에 영희 씨의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

“ 퇴직금으로 보증금을 다 갚고 그때부터 어머니 병간호를 시작했지 . 2 년 동안 나 혼자 먹고 자고 예수병원에서 버텼지 . 더 이상 가망이 없어서 나중에 집으로 모셔왔지 . 중환자실에 있던 장비들을 구입해서 방 한 칸에 들여놓고 간호를 했지 . 딱 6 개월 사시고 돌아가셨어 .

강영희 씨가 가꾼 정원이자 작은 숲
강영희 씨가 가꾼 정원이자 작은 숲

장례 치른 뒤에 어머니 계시던 방에서 자려고 하니까 힘들더라고 .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주물러드리고 씻겨드리고 했는데 안 계시니까 우울증이 생기더라고 .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그랬지 . 집사람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그렇게 하세요 , 그래 .

그래서 연고도 없는 완주 소양으로 이사를 온 거지 .” 완주살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중장비 관련 자격증과 산림 · 조경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고산자연휴양림 내 식물원 온실의 조경 관리 담당자로 일하게 되었고 , 그곳에서 꼬박 8 년을 근무했다 .

강영희 씨는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고 , 글을 써 본 적도 없었다 . 그러던 어느 날 , 일터에서 일하던 중 비가 내려 일을 멈추고 평상에 앉아 쉬던 순간 ,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

그 감정을 따라 , 조경 근무 일지를 적던 수첩에 난생 처음으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2018.8.31. 금요일 . 비 그칠 줄 모르는 줄기찬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저 빗줄기처럼 힘차게 살아오면서 빗줄기도 언젠가는 그치는 것 같이 우리네 인생의 종착역도 그러하리라 .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공간에서 인생의 미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 인간이 가장 추한 모습을 보일 때는 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던가 . 가거라 세월아 . 멈추지 않는 시간아 . 나는 이 순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영원을 향해 가리라 .

“ 자식들이나 집사람한테 종종 메시지를 보내는데 가족들이 감동해서 울기도 해요 . 시인 같다고 아버지 시집 내드려야 한다는 말도 하고 .” 인생의 길목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섬광을 발견한 순간 먹고 사느라 바빴던 남자는 애틋하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무를 가까이했다 .

예순이 넘어서야 마음속에 일렁이는 것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 저녁 7 시만 되면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살이에서 찾아낸 것은 색소폰이었다 . 우연히 들었던 색소폰 소리가 좋아 무작정 악기를 사고 학원을 다니며 음계공부부터 시작했다 .

매일 아침 색소폰 연습을 해야 손이 굳지 않는다.
매일 아침 색소폰 연습을 해야 손이 굳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2023 년 고산면의 하나뿐인 실버밴드 ‘ 만경밴드 ’ 가 탄생했다 . 총 12 명 구성원의 평균연령은 60~70 대 . 만경밴드 멤버들은 각각 드럼 , 색 소폰 , 기타 , 보컬을 담당하며 늘 화려한 의상으로 등장해 좌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요양보호시설 , 주간보호센터 , 시골 장터 , 마을 축제 등 모든 곳이 그들의 무대이다 . 개성 넘치는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이가 바로 강영희 씨다 . “ 내가 유능하고 똑똑해서 대표가 된 건 아니에요 . 나는 조용한 리더가 되기로 했죠 . 뒷바라지하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해요 .

우리가 젊어서는 먹고 사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고 연륜이 있으니 그동안 먹고 사느라 못했던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밴드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죠 . 나는 타인에게 표본이 될 정도 아름답거나 헌신적으로 살아오지 않았어요 .

그래도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활신조에요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왔다고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죠 . 그런 하루 중에서도 뭔가 의미있는 것을 찾아야죠 . 대부분은 그것을 발견 못 하지 .

나는 계속 찾고 발견하고 싶어요 .” 우리도 인생의 조각 중에 분명 그러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 늦지 않았다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고산자연휴양림에서 조경관리일을 하며 기록한 근무일지.
고산자연휴양림에서 조경관리일을 하며 기록한 근무일지.

현장 사진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사진 1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사진 2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사진 3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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