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힌 관계들의 힘 - 고산면 상리 김지연 이야기 김지연 씨가 일하는 사무실은 내가 일하는 곳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 오랜만에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 지연 씨는 완주친환경농업인협회가 운영하는 친환경자재 판매점에서 실장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다 .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편안한 사랑방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 지연 씨가 뿜어내는 기운 탓일 테다 . 사무실을 둘러보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 사물함 손잡이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조끼들 .
겹겹이 하나씩 젖혀 보는데 이것은 흡사 7 개의 드래곤 볼을 모두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전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가 ! 그의 모험담이 궁금했다 .
의용소방대 , 자율방범대 , 자율방재단 , 지역사랑봉사단 , 여성 예비군 , 대한 적십자봉사회 , 사랑의 연탄나눔을 비롯한 수많은 봉사활동의 결과가 알록달록한 조끼 위에 오바로크로 새겨져 있었다 .
그리고 주민자치위원회와 부녀회 활동까지 김지연 씨가 관계하고 있는 지역사회 활동은 적어 놓지 않으면 외우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았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지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지역사회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지 그 이유와 동력이 궁금했다 .
“ 제가 이번에 의용소방대 부대장 면접 보러 갔는데 , 시골이 작으니까 몇 개 활동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 시골이라 활동하시는 분들은 한정이 되어 있고 저뿐만 아니라 모든 봉사하시는 분들은 다 겹쳐서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어요 . 봉사도 봉사지만 , 솔직히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활기를 찾았어요 .
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 봉사 일을 시작한 시기에 갑상선 수술을 했어요 . 약을 먹는데 부작용이 심해서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몸을 움직였어요 .
내 아픈 걸 잊기 위해 시작했는데 나보다 어려우신 분들도 만나고 나이 드신 분들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 봉사하시는 분들이 맨날 하시는 말씀이 ‘ 봉사는 사랑입니다 ’ 라고 하는데 정말로 사랑이더라고요 . 내 건강도 찾고 삶의 활기도 찾고 .
누구의 부인 , 누구의 엄마를 떠나서 이게 나 김지연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으니까요 .” 1973 년생 김지연 씨는 고산 토박이다 . 고산휴양림 근처 양막 ( 현재 오산리 동봉마을 ) 에서 1 남 3 녀 중 첫째로 태어났고 부모님도 한 동네 결혼을 해서 외가도 친가도 모두 한 마을이다 .
어린 시절에는 명절 때 귀경길을 떠나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 스무 살이 되자마자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소개팅으로 남자를 만났는데 하필이면 봉동읍 출신의 남자를 만났다 . 완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었다 . 짧은 전주 신혼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인 고산으로 돌아와 지금껏 살고 있다 .
“ 저는 음력 5 월에 외갓집 사랑방에서 태어났어요 . 늘 일가친척들로 북적였고 사랑 받고 잘 자랐어요 . 아들 , 딸 차별 없이 잘 컸죠 . 학교도 고산초 , 고산중 , 고산고를 나와서 말하자면 < 쓰리고 > 죠 . 솔직히 어렸을 때는 맨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
전주에 직장생활하면서 버스 타고 나갈 때 내가 이제 이 버스를 타고 다시는 안 들어와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 어렸을 때는 도시로 나가는 걸 동경하잖아요 . 젊었을 때는 삶을 새롭게 살고 싶기도 하고 .
내가 이 버스를 타고 안 들어와야지 했었는데 어떻게 살다 보니까 다시 또 들어오게 됐네요 .” 그녀는 거의 평생을 고향인 고산에서 살아왔지만 , 의용소방대와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며 고산에 이렇게 많은 동네가 있었는지 , 골짜기는 왜 이리 많은지 , 또 이렇게 많은 저수지들이 있었는지를 새삼 알게 됐다고 한다 .
자율방범대의 순찰은 밤에 이뤄지며 , 특히 어둡고 후미진 곳을 살핀다 . 예전에는 밝은 곳만 바라보며 몰랐던 사각지대를 일부러 찾아다니고 , 도움이 필요한 곳을 먼저 살핀다 . 철없이 뛰놀던 동네를 이제는 어른이 되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느끼는 소회가 궁금했다 .
“ 저는 추위가 싫어서 겨울이 제일 힘들어요 .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누워야지 할 시간에 이제 옷 입고 나가야 되잖아요 . 그래도 이게 참 재미있어요 . 대원들이 다 또래 친구들이고 친한 언니 오빠예요 .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컸다는 걸 느끼죠 .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가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왜 이렇게 작아 하듯이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이던 동네가 이렇게 작았구나 하고 새삼 느껴요 .
어렸을 때 보던 동네 어르신들도 기억에는 젊었었는데 지금은 다들 너무 나이가 드셨어요 , 그러니까 그때 큰 어른들 같은 존재가 지금 내가 그렇게 된 거죠 . 그러니까 당연히 마을을 돌보고 마을 대소사도 다 살펴보는 것 같아요 .” 지연 씨의 남편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
이렇게 활동적인 지연 씨 부부에게서 태어난 삼형제 이야기가 문득 궁금했다 . 첫째는 96 년생 , 둘째는 97 년생 그리고 막내 혁규는 2003 년생이다 .
통닭을 사주겠다는 엄마의 유혹에 넘어와 둘째와 셋째는 봉사활동에 자주 동행했고 , 특히 막내 혁규는 그때의 기억을 대학입학 자소서에도 썼다고 한다 .
지역의 농업관련 단체의 사무실에서 10 년째 일하면서 그렇게 많은 봉사활동을 해나가면서도 그녀는 아직도 배우고 싶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 “ 나는 지금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요 . 솔직히 제가 지금 만학도거든요 . 아들들이 엄마 닮았나 봐요 .
우리 집에 뒤늦게 공부 바람이 불어서 대학생이 많아요 . 저는 지금 우석대학교 조경학과 3 학년이고요 .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죠 . 내가 스스로 인정하는 건 그래도 3 년 동안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
그냥 꿈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배우고는 싶었는데 , 그게 혼자 도전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 그래서 저희 봉사 단체에서 거의 열 몇 명이 한꺼번에 대학입학해서 같이 배우고 있어요 . 공부하는 게 참 재미있어요 .” 김지연 씨는 자신의 봉사활동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했다 .
그저 고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 동네에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 그러면서 사람들과 맺어진 관계들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영글어 , 결국은 동네가 안전하게 지켜지고 사람들의 삶과 마음도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
더운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을 김지연씨와 봉사활동 동료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며 조금은 선선해진 초가을에는 그들의 발걸음이 여름보다 더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