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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4.10.23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4.10.23 16:14 조회 8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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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무를 깎는 힘으로 순식간에 오르는 바위 -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고산면에서 큰길로 오르는 길목에 덕암마을이 있다 . 열두 번의 가을을 맞이하는 동안 숱하게 오고 갔던 길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 평범한 시골 마을 안에 누군가가 구축한 깊고 단단한 세상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

암벽 등반하는 이광민 씨
암벽 등반하는 이광민 씨

그 누군가는 불상조각가 ( 나운불교조각 , 국가무형문화재 108 호 이수자 , 문화재 목조각수리 기능자 2149 호 ) 이자 클라이머 ( 암벽등반가 ) 이광민씨 (1967 년 ) 다 . 오고 가며 무심히 보았던 나무대문집이 이광민씨의 작업실이다 .

‘ 나운불교조각 ’ 이라는 이름으로 터를 잡은 것이 30 년이 되어가는데 나는 왜 이곳의 존재를 몰랐을까 . “ 내가 속세에 나가 속인들 만날 일이 뭐 있나 .

불상 깎으니까 스님들만 상대하지 뭐 .” 나무조각을 좋아하던 소년이 불상조각하는 청년이 되기까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9 살에 서울에 가서 살게 된 이광민씨는 유난히 나무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 손재주가 좋아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건축설계를 전공했다 .

고 3 때 대학진학을 위해 투시도 관련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갔는데 우연히 목공예 책을 보고 나무조각하는 일에 꽂혀 직업훈련소를 택했다 . “ 불상조각은 20 살 때부터 했어요 . 목공예도 급수가 있어요 .

직업훈련소에서 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1 등급으로 불상조각하고 그 다음은 가구조각 , 그 다음은 시중물건조각을 하죠 . 한창 일 배울 때는 자료가 없어서 전국의 절을 다 돌아다녔지 . 자료가 없으니까 오로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닌 거지 . 궁금증 때문에 .

휴가만 생기면 버스타고 서울서 해남까지 내려가서 절 찾아 다니면서 필름카메라로 찍고 내 자료 모아놓고 . 직접 보면 달라요 . 그냥 사진만 보는 거랑 달라요 . 만약 그때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로 배우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 같아 .

스무살 무렵의 열정이나 절실함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있는 거 같아요 . 내 마음이 절실하지 않으면 작은 것이 보이지 않거든요 . 칠불사 갈 때는 버스타고 화개장터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서 불상보고 사진 찍고 다시 내려와서 개천 한번 보고 산딸기따먹고 또 다른 절로 걸어가고 .

남들 여름휴가 즐기는데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절을 찾아갔지 . 나는 그게 좋았으니까 .” 서울 살던 이광민씨가 완주에 터를 잡게 된 것은 금산사 화재 때문이다 . 1986 년 금산사 대적광전에 원인 미상의 불이 나 전소되었고 1990 년에 복원되었다 .

대적광전 복원을 위해 전국의 불상조각가 , 목수들이 모여들었고 이광민씨는 복원완성 1 년 전에 합류해서 금산사에 상주하며 마무리 작업을 함께했다 . 그 뒤 29 살에 스승으로부터 독립해 작업실을 찾던 와중 완주 덕암마을 지금의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 “29 살에 독립했을 때 진짜 시건방졌어 .

암벽 등반을 연습하는 암장에 선 광민 씨
암벽 등반을 연습하는 암장에 선 광민 씨

내가 불상조각을 제일 잘 한다고 생각했어 . 그래서 스님들이랑도 대판 싸우고 그랬지 . 대판 싸웠어도 2 년 있다가 전화 오면 또 일하고 그러죠 . 어떤 절은 작업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주기도 하고 , 좋은 스님들은 하필이면 절이 가난해요 . 그럼 내가 손해보더라고 해드리는 거야 .

그런데 어떤 스님이 그러시더라고 . 세상에 공짜는 없다 . 다 돌고 돌아 돌아온다고 . 아닌게 아니라 돌아오더라고 . 나는 이 일 하면서 세상이 참 공평함을 느껴 . 어떤 절에서 손해를 보면 꼭 엉뚱한 다른 곳에서 이익이 돌아오더라고 . 봄 오면 여름 오고 가을 오는 이치랑 똑같아 .

손해보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하고 그냥 해 . 근데 돌아오는 주기가 10 년이야 .( 웃음 ) 너무 오래 걸려 인내를 많이 해야 .” 불상조각작업실 옆 레전드클라이밍짐 이광민씨가 유일하게 속세에 나가 속인들을 만나 즐기는 취미는 암벽등반이다 .

산악부대에 입대해 지긋지긋하게 산속을 뛰어다니면서 죽어도 산은 오르지 않으리 다짐했지만 불상조각하다가 쉬고 싶을 때는 저절로 산으로 향했다 . 전국의 산들을 오르다가 바위를 넘고 싶어 등반을 시작하게 되었다 . 등반인생 30 년이 되어간다 .

불상조각 작업실 옆의 공간이 무엇인가 했더니 암벽등반 연습하는 암장이었다 . 청소년 클라이밍 국가대표 선수들도 종종 방문해 연습하고 이광민씨가 지도하기도 한다 . 간판은 없지만 구글지도에 ‘ 레전드클라이밍짐 ’ 을 검색해 보시라 .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울어진 벽면에 알록달록 빼곡하게 박혀있는 홀드 ( 벽을 오를 때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 ) 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압도되고 만다 . “ 짧은 시간 동안 밑에서 정상까지 순식간에 올라가잖아 . 그 쾌감이 굉장해요 .

그걸 딱 끝냈을 때는 힘이 하나도 안 들어 .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좋아요 . 내가 하는 일은 몇 십년을 해야 입에 풀칠하고 실력도 천천히 느는데 등반은 내 힘으로 잠깐 올라가면 금세 올라갈 수 있는 거지 . 내 삶의 돌파구야 .

연꽃좌대, 석가모니불상,뒤에 후광이 한 세트. 옻칠을 여러번 하고 말리는 과정이다.
연꽃좌대, 석가모니불상,뒤에 후광이 한 세트. 옻칠을 여러번 하고 말리는 과정이다.

잠깐 오르면서 즐거움 , 해방감을 얻을 수 있는 거지 .” 이광민씨는 아직도 불상의 입부분 표현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 어린 시절 처음 불상조각을 시작할 때는 부처님 머리카락 돌려 깎는 일을 수없이 했다 . 스승이 인정하면 이제 다음 단계를 조각하는 것이다 .

불상의 뒤쪽 옷 주름을 잘 깎으면 앞쪽 옷 주름을 깎는다 . 그러다가 가슴부분을 깎고 손을 깎고 눈과 코를 깎다 보면 입에 다다르는 것이다 . 미묘한 미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 “ 통일신라시대 때 불상은 볼륨이나 윤곽이 또렷해서 깎기에는 훨씬 쉽죠 .

그런데 밋밋하고 단순할수록 흉내내기 어려워요 . 입부분을 잘 못 깎으면 새침데기 부처님이 돼요 . 아흔이 넘은 우리 사부님은 지금도 힘들어하세요 . 입부분 조각할 때 이 부분은 평생조각해도 힘든 부분이에요 .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29 살에 독립했지만 , 그때부터 조각인생이 시작된 거 같아요 .” 스무 살에 조각을 시작해서 20 년 차가 되니까 비로소 걸음마를 하는 것 같고 30 년차가 되니까 조금 알겠고 내년이면 40 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힘빼고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

좋은 은행나무를 골라 겉목을 쳐가며 세심하게 조각을 하면 속을 파내야 겉이 갈라지지 않는다 . 그렇게 6 개월 가량을 말려서 세모시로 배접을 하고 그 위에 옻칠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열 번을 거친 뒤 금박을 붙이는 것이다 . 잘 만들어진 불상의 기준은 무엇이냐 물었다 .

“ 봐서 좋으면 좋은 거에요 .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순수하게 봤을 때 좋으면 좋은 거야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사진 1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사진 2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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