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이달의 책] 베르:봄 책방 '새벽'

새벽 (슐레비츠).jpg


질문이 있는 이달의 책



<새벽>

유리 슐레비츠 글.그림┃시공주니어┃32쪽┃1994┃1만5백원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새벽」은 이야기를 크게 말하지 않는 책입니다. 대신 아주 작은 빛의 변화와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을 통해,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서서히 다가오는 그 시간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새벽이라는 현상 자체를 펼쳐놓습니다. 처음엔 푸르고 두터운 어둠뿐입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 같고, 세상 전체가 숨을 멈춘 듯한 순간.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기척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하늘의 농도가 바뀌고, 멀리서 희미한 선이 생기고, 풍경은 아주 느린 속도로 제 그림자를 다듬기 시작합니다. 단지 빛이 바뀌어 갈 뿐인데, 책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마음도 그 빛에 맞춰 서서히 깨어나는 듯합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새벽길에서 종종 느꼈던 그 ‘경계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퇴근하며 지나던 새벽길,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알 수 없는 그 애매한 시간대. 가장 늦은 밤과 가장 이른 아침이 손끝을 맞대고 있는 것 같은 순간.

슐레비츠의 그림 속 새벽은 바로 그 모호함, 그 흔들림, 빛과 어둠 이 서로를 밀어내거나 삼키지 않고 조용히 이어지는 그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마지막 불빛 같은 어둠과 처음 스며드는 빛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하루의 끝과 시작이 사실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일은 끝났지만 또 다른 일이 시작되려는 기척이 있고,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머물러 있는 자리. 저는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살짝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덕에 마음이 다시 정리되는 시간. 그것이 새벽이 가진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슐레비츠는 그 특별한 순간을 그림으로, 감각으로 더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한 권의 그림책이지만 읽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새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루의 첫 숨을 느껴보고 싶을 때, 마음속에 작은 평온이 필요할 때, 혹은 오래된 습관처럼 찾아오는 새벽의 기분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 베르:봄 책방은 이번호를 끝으로 질문이 있는 이달의 책 연재를 마칩니다.



[정보] 베르:봄 책방

주소_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 1길 13

문의_ 010-2074-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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