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그리움을 추모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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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추모하는 노래

(26) 박인수의 [향수]



원래도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정지용의 향수는 김희갑의 선율을 만나 성격이 조금 바뀌면서 유명세를 더해갑니다. 단순히 읽는 시가 아니라 한국인의 귀와 목에 붙은 공동의 기억이 된 것입니다. 특히나 이동원과 박인수의 듀엣은 이 노래를 개인의 향수에서 세대의 향수로 확장시켜주기까지 합니다. 이동원의 대중가요적 서정과 박인수의 성악적 깊이와 진정성이 만나 사적인 그리움과 공적인 품격을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정지용의 시는 감각의 시입니다.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서리 까마귀 우지짖는 지붕 등, 이건 의미의 영역을 넘어 소리와 냄새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김희갑의 곡 또한 이 감각을 설명하지 않고 머무르게 만듭니다. 선율이 한 번에 뻗지 않고 조금씩 올라갔다가 멈추고 다시 젖어들듯 이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어쩌면 우리들 기억이 되살아나는 방식이 이를 닮았을 것입니다. 추억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돌아오니까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후렴구는 시나 노래 모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마법의 지점입니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는 꽤 강한 단정으로 읽히지만 노래에서는 탄식으로 들립니다. 시는 잊지 못하겠다는 것을 수사를 통해 적시하지만 노래는 사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다는 가슴 속 비밀을 은근히 들려줍니다. 그래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잠시 멈춰 서게 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유독 좋아하고 또 잘 부르던, 제가 많이 따랐던, 선배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통증의학을 전공하셨지만 첼로 연주까지 할 수 있는 준 프로 음악가였습니다. 다른 한 분 역시 셰익스피어 전공교수였지만 대금과 거문고를 다룰 줄 아는 찐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그렇게 너그러운 분들이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서둘러 떠나셨을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어느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신던 곳으로 그렇게 황망하게 떠나버린 것일까?

이동원과 박인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달래봅니다. 이 곡이 위로가 되는 것은 어떤 희망을 말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노래는 상실을 상실이라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달래줍니다. ‘괜찮아질 거야가 아니라 그리운 건 그리운 거야라고 말해줌으로써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있어 그 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듀엣이 만드는 두 겹의 층위가 이런 효과를 배가시켜줍니다. 이 노래를 혼자 부르면 대개 개인의 회상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둘이 교차하면 갑자기 차원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 안의 두 목소리, 예를 들면 젊은 날의 나와 꽤 긴 세월을 건너온 나, 아니면 떠나온 이의 마음과 남아 있는 이의 마음을 함께 머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어떤 오묘한 구조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죽음이 그냥 단절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임을 더 잘 느끼게 해줍니다.

이 시와 노래의 핵심 매력은 촌스럽지 않은 향수에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자칫하면 금방 촌스러워지거나 눈물 짜는 감상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지용 시인은 과장된 언어를 억제함으로써 품격을 유지했고 김희갑의 선율 또한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다독여주는 것입니다. 두 선배 교수님의 중저음 바리톤 음색이 똑 그랬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시와 노래가 그리는 것이 터로서의 고향을 넘어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고향이 없는 사람도 이 노래를 들으며 울컥해질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에 귀 기울이며 되새기는 것은 잃어버린 것들을 품고도 우리는 살아간다! 아니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모의 정에 이끌려 너무 과하게 새겼나요? 그러나 슬픔을 더 크게 키우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슬픔을 우리가 견딜만하게, 살아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바꿔주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의 힘이요 시의 효용이라 하겠습니다.

두 분 선배 교수님이 이동원과 박인수가 되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너머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 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차마 꿈엔들 잊힐 리있겠는지요?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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