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통역사 강지현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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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세상에 손짓으로 말하는 사람

수어통역사 강지현 씨 이야기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몸짓과 손짓에 의한 의사 전달 방법.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및 그 위치나 이동에 덧붙여,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종합하여 행하여진다. ‘수어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예전에는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하여 수화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수어20162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며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국어, 영어를 배우듯 수어를 배우게 되는 세상이 올 듯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수어를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23년 완주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서 강지현씨를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이었다.

그날 공연과 전시 사회를 진행하게 된 나는 어수룩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 두서없이 말을 시작했는데 그 말들을 수어로 통역하던 사람이 바로 22년차 베테랑 수어통역사 강지현(78년생) 씨였다.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수어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었다.

98년 전북수어통역센터지원본부가 생기면서 현재 전북특별자치도에는 15개의 수어통역센터가 있다. 지현씨는 2002년 수어통역센터에 입사해서 남원에서 2, 김제에서 2년 반, 전북본부에서 12년 동안 근무하고 2017년 완주수화통역센터로 이직해 지금껏 근무 중이다. 어쩌다보니 전북 수어통역의 역사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손이 바빴던 나날들이었다.

 

대학동아리 활동할 때 제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단체하고 어울려서 농아인들과 함께 12MT를 갔었는데. 그 전에는 비장애인들이 취미로 우리끼리 수화를 배우기만 하다가 그때 농아인들을 처음 만난 거에요. 나도 1년 반 동아리 활동하면서 수어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니까 잘 못하겠더라고요.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 실컷 배웠는데 실제로 외국인들 만나면 입이 딱 막히는 것처럼. 교과서적인 것만 배웠지 농아인들이 실생활에 쓰는 표현은 하지도 못하겠고 이해하지도 못하겠는 거죠. ? 이게 뭐지.. 내가 배운 것은 헛것인가..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 곳곳에 수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면 농아인들은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겠구나. 그때 그 밤에 그 생각인 든 거에요.”

 

뉴스를 볼 때 화면 하단의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손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 내가 생각했던 수어통역에 대한 세상은 그 동그라미 보다 훨씬 작았다. 강지현 씨에게 들은 수어통역사로 살아온 삶은 결코 화면의 동그라미 속 세상만큼 좁지 않았다. 단순히 전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아인 삶 속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농아인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영상통화로 119신고도 가능하고 TRS라는 중계통역서비스도 있어서 연결방식들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 마저도 녹록지 않다.

 

젊은 농아인들은 아무래도 수어통역센터에 의뢰하는 방식보다는 직접 중계통역서비스를 이용해요. 통역사들이 24시간 근무하면서 통역을 해주는 서비스인데, 단점은 말의 오류가 있어도 그냥 그대로 전달만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서로 관계라는 것이 없으니. 영어문장을 구글 번역기로 돌릴 때 이상한 문장으로 번역되고 그러잖아요. 어떤 한 사람의 말을 통역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한 사람의 배경이 쌓여 있어야 더 좋은 전달이 되는 거죠. 그래서 통역을 맡겼던 사람한테 계속 맡기고 싶은 거죠.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까. 전달만 하면 편하죠. 우리도 처음에 교육받을 때는 전달자로만 받아요. 하지만 계속 수어통역사로 일하다 보면 전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결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줄 수는 없어요. 젊은 사람들한테는 네가 먼저 해봐. 안되면 도와줄게먼저 그렇게 이야기 하죠. 농아인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의지가 생길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수어통역사로 오랜 세월 활동하다보니 그에게 생긴 별명이 있다.

병원은 강지현. 큰 병엔 강지현

유난히 의료적인 응급상황이 많았고 농아인과 함께 병원에 동행해 수어통역을 하다 보니 간단한 의료지식들이 쌓이기도 했다.

스킨스쿠버활동을 하던 농아인의 혈압이 올라 대동맥 박피로 위급상황일 때 그의 곁에 지현 씨가 있었고 큰 교통사고로 병원을 오고 가던 농아인 곁에 지현 씨가 있었다. 혈액암 선고를 받았던 아주머니 곁에서 함께 울면서 통역을 했던 이도 지현 씨였다. 신참내기 시절에는 어떤 상황이든 경험하고 싶어서 산부인과에서 아이 낳는 과정을 통역하기도 했다. 그때 아이 낳던 농아인 언니의 손을 잡아 주었는데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지현 씨 손에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있다. 매년 전북농아인체육대회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계시는 분들을 만나 안부를 주고받는다.

 

배워야 할 게 많아요. 법도 알아야 하고 의학도 알아야 하고. 본의 아니게 농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상담도 하곤 해요. 얘네들이 부모걱정이 돼서 곁을 못 떠나기도 해요. 그럼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고. 너네 부모님 씩씩하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 말고 할 일 찾아 떠나라고. 그런 아이들 중에 특수교육과에 가서 특수교사가 되기도 하고 그랬죠. 심리상담은 감사하게도 주변에 상담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청소년 상담하는 것도 도움 많이 받고 그 친구들이 어찌보면 제 슈퍼바이저역할을 하는 거죠.

지금은 119신고도 영상전화도 되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죠. 새벽에도 전화가 오면 출동해야해요. 퇴근을 하긴 하지만 그 후에도 대응해야 해요. 그나마 지금은 새벽 3시든 5시든 출동하게 되면 시간외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요. 그 전에는 그런게 없었어요. 그냥 당연하게 일을 했죠. 아무래도 사회복지 쪽 일이 그런 경향이 있어요. 저는 어느 순간에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소리가 듣기 싫더라고요. 그걸로 딱 씌어 버리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버려야 하는 거에요. 나는 내가 일한 것에 대해 돈을 요구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죠. 요즘은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면 그냥 웃으면서 월급 받으니까 해요.’ 그렇게 말해버려요. 저에게 이 일은 직업인데 많은 사람들은 재능기부, 봉사개념으로 생각하시는데 잘못된 생각이라고 웃으면서 짚어주는 거죠.”

 

저녁 뉴스가 시작되면 이제 영상의 하단을 계속 보게 된다.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수어통역사의 손동작 표정을 살피게 된다. 지현 씨는 어느 곳이든 수어통역사가 있는 곳을 꿈꾼다. 경찰서에도, 병원에도, 학교에도. 어느 곳에서든 말소리가 들리듯 수어하는 손동작들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모르니까 다가가기 어려운거에요. 한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계기가 없었으니까 몰랐던 거죠. 수어를 몰라도 되요. 서로 관계가 생기고 손짓발짓으로 전달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서로 눈을 보고 알아 가면 다 알게 되어 있어요.”


글·사진=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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