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동 낙평리 유아름, 이종철 이야기

베이커리 담당 유아름 씨와 음료 담당 이종철 씨.jpg
갓 만든 위크앤드의 다양한 빵들.jpg
해질 무렵 봉동 낙평리의 베이커리 카페 위크앤드 전경.jpg
아름 씨가 베이커리에 대한 영감을 키우는 데 도움을 받았던 미국의 리빙 잡지.jpg


쉬거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위크앤드!

- 봉동 낙평리 유아름, 이종철 이야기



2013년에 임순례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 는 기존 사회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찾아 ‘남쪽’으로 떠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산에서 빵집 ‘구운’을 운영하다 봉동에서 새로운 빵집 ‘위크앤드’를 연 유아름(77년생) 씨와 이종철(79년생) 씨는 지난 2019년 서울살이를 뒤로 하고 아무튼 남쪽으로 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의 남쪽에 있는 완주로 터를 옮겼다.


“삶터를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종철 씨도 나도 40대가 되어가며 도시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렇다면 지역으로 가서 살아보자는 생각이 통했죠. 지역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언젠가 우리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완주로 내려올 결심을 했을 때가 30대 후반이었는데, 서울에서 늙어갈 것을 상상을 못하겠는 거 예요. 남쪽으로 도망간 거죠. 그때 유명했던 소설이 『남쪽으로 튀어』 였거든요. 솔직히 대단한 포부 그런 것 없이 그냥 도망치자, 노년에 늙어서라도 숨 쉴 곳으로 도망치자.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데 마침 잠깐 몸담았던 회사의 친구들이 완주에 많이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완주가 귀농귀촌 홍보를 많이 하던 때였어요. 그때 내려와서 지금껏 살고 있죠. 아름 씨는 이사 오 듯 홀가분하게 왔고, 저는 이곳을 제2의 고향으 로 생각하고 진지하게 살고 싶은 거죠.” 


아름 씨는 강원도 정선 사북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경기도에서 보냈고 인생의 절반 이상은 서울 이태원에서 살았다. 중학교 때 미술을 배우고 예술고에서 도예디자인을 전공했다. 서울에 살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건설회사에 취직해 10년 동안 하도급 계약팀에서 일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지나갔던 남산 소월길에서 내려다본 서울풍경에 반해서 언젠가 혼자 살게 되면 이태원에 살으리라 마음을 먹었다고 한 다. 이태원 살면서 타지역 사람으로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이 뒤섞여 있다 보니 굳이 어디 출신, 어느 지역, 어느 학교, 가정 형편 등 백그라운드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틈틈이 여행을 다녔고 이태원과 해방촌, 홍대 근처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팔던 종철 씨를 만났고, 약간의 돈을 모아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을 때 커다란 냉장고와 가정용 오븐을 사서 「마사 스튜어트 리빙」 같은 잡지를 보며 혼자서 베이킹을 시작했다. 2012년 서울시청 행사 에서 도시양봉을 처음 접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 꿀벌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활동가 (beesavers) 모임을 2019년까지 유지했다. 완주로 내려오기 전에는 여성인권단체에서 잠시 일했고 지금은 베이커리 카페 위크앤드에서 종철 씨와 함께 베이킹을 하고 있다. 잠깐 들었던 아름 씨의 살아온 이력을 몇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 이태원에 있는 영어서점 잡지코너에서 「마사 스튜어트 리빙」이라는 잡지를 봤는데 연예인 소식 같은 것은 없고 생활, 베이킹, 정원 꾸미기, 바느질, 뜨개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 잡지를 보며 공부를 많이 했죠. 잡지에서 봤던 것들을 실제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만들었죠. 그때 처음 만들어 본 게 마들렌, 스콘, 쿠키 이런 것들이었어요. 만들어서 친구들 맛보라고 막 나눠주던 때였는데 맛있었나 봐요. 퇴근하면 집에 와서 매일 베이킹을 했죠. 내가 만든 결과물을 선물했을 때 받는 사 람이 흡족해하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에 내가 기쁨을 많이 느끼더라고요. 만드는 것 자체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아름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집에 가니까 책장에 잡지가 있었어요. 외국에서 유명한 마사 스튜어트 잡지가 잔뜩 있는 거예요. 거의 초창기 책부터 최근호까지 다 있었어요. 그 책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요리에 관심이 있으며 외국서적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구나. 글로벌 스탠다드와 함께 호흡을 하고 있구나, 뭔가 깊이가 느껴졌어요.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나는 아름 씨가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아름 씨의 관심과 경험을 알게 되면서 더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아름 씨는 2013년에 이태원에서 종철 씨를 처음 만났다. 동네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을 구경하러 갔는데 종철 씨는 무언가를 팔고 있는 셀러였다. 그 다음에 용산 해방촌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거길 갔는데 거기서 또 종철 씨를 보게 됐고 홍대 앞에서도 둘은 또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그러다 둘은 조금 더 친해졌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좋은 이야기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껏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은 6시 반에 출근해서 7시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순차적으로 빵이 나오고요. 저는 이 일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든 내가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베이커가 되면서 조금 변화된 점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일로 거짓 없고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완주에 와서는 그 일이 바로 베이킹인거죠. 완주 내려오기 전에는 여성인권단체에서 잠깐 일을 하기고 하고 도시양봉으로 사회와 자연환경에 대한 주제로 내 삶의 의 미나 내가 바라는 것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등을 인지하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주에 와서 베이킹하면서 매일매일을 지내다 보니 그 전에 못 느꼈던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일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그 일을 통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발산하는 것도 달라진 것 같고요. 전에는 단순하게 커피 한 잔, 빵 하나 만드는 것을 적정하게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것을 만들고 이것을 가져가는 사람, 먹는 사람에 대한 상상을 해요. 근본적으로 당연한 것들,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내 삶에 녹아 든 느낌이고 그것이 생업을 통해 발산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사람들은 생각하고 싶거나 휴식하고 싶을 때 차나 디저트를 먹는다. 어려운 일을 해결해 줄 수 는 없지만 여유로움을 줄 수는 있다. 아름 씨와 종철 씨는 자신들이 만든 차나 디저트가 사람들 곁에서 좋은 전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산에서 빵집 ‘구운’을 할 때부터 나름 단골이었던 나는 혼자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소리 없이 강한 자 유아름, 넷플릭스에서 재미있게 봤던 <핫스팟>의 이상하지만 귀여운 외계인 같은 이종철. 어쩌면 인생의 위크앤드를 완주에서 보내고 있을 이 두 사람이 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 완주에서 오랫동안 빵을 구우며 다른 이들에게도 여유로운 위크앤드를 만들어주길….



/글·사진=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첨부파일

댓글 0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과 답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목록으로 돌아가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