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나는 아름다운 섬광을 보았다
- 만경밴드 대표 강영희 이야기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을 휘돌아 가는 길옆에 그가 일군 숲이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일터를 오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와 여름이면 짙은 녹색을 품은 나무들이 늘 좋아 보였다.
강영희씨(1951년생)는 20년 전 밭자리였던 이곳에 터를 잡고 빨간 벽돌집을 지었다.
소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매실나무, 벚나무, 철쭉, 수국 등이 피어난 강영희씨의 마당은 정원보다는 숲에 가깝다.
“언젠가 시골 가서 살면 내가 심고 싶은 나무 실컷 심고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사 와서 나무를 심기 시작한거에요. 20년이 지나니까 숲이 되었어. 너무 우거져서 좀 베어냈죠. 우리 집에 없는 나무가 없어. 울 안에다 큰 나무 심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그냥 심고 싶었던 나무를 실컷 심었어요.”
정착해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청년
“오형제 중에 제가 셋째에요. 부모님이 이번에는 딸을 낳겠지하고 이름을 지었는데 또 아들을 낳아 버린 거야. 그래서 내 이름이 ‘강영희’가 된 거지. 어렸을 때 친구들이 많이 놀렸지. 1학년 입학하면 국어시간에 제일 먼저 배우는게 뭐겠어요? 영희야, 철수야 학교가자잖아.”
강영희 씨는 군산 옥구군 나포면에서 태어나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1년마다 전학을 다니느라 깨복쟁이 친구가 없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으면 한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아 결혼 후 첫째가 태어나자 마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3~5배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1년 동안 일한 돈을 모아 전주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 모든 것이 사막에서 흘린 땀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 뿌듯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겨울, 눈 대신 차가운 뉴스가 쏟아졌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밭을 일구고 숲을 가꾸다
강영희 씨는 그 당시 과장직급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지만 고민 끝에 조기명퇴를 선택했다. 지인의 대출 보증을 섰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 보증금을 대신 갚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에 영희 씨의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퇴직금으로 보증금을 다 갚고 그때부터 어머니 병간호를 시작했지. 2년 동안 나 혼자 먹고 자고 예수병원에서 버텼지. 더 이상 가망이 없어서 나중에 집으로 모셔왔지. 중환자실에 있던 장비들을 구입해서 방 한 칸에 들여놓고 간호를 했지. 딱 6개월 사시고 돌아가셨어. 장례 치른 뒤에 어머니 계시던 방에서 자려고 하니까 힘들더라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주물러드리고 씻겨드리고 했는데 안 계시니까 우울증이 생기더라고.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그랬지. 집사람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그렇게 하세요, 그래. 그래서 연고도 없는 완주 소양으로 이사를 온 거지.”
완주살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장비 관련 자격증과 산림·조경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고산자연휴양림 내 식물원 온실의 조경 관리 담당자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꼬박 8년을 근무했다.
강영희 씨는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고, 글을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터에서 일하던 중 비가 내려 일을 멈추고 평상에 앉아 쉬던 순간,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감정을 따라, 조경 근무 일지를 적던 수첩에 난생 처음으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18.8.31. 금요일. 비
그칠 줄 모르는 줄기찬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저 빗줄기처럼 힘차게 살아오면서 빗줄기도 언젠가는 그치는 것 같이 우리네 인생의 종착역도 그러하리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공간에서 인생의 미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가장 추한 모습을 보일 때는 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던가. 가거라 세월아. 멈추지 않는 시간아.
나는 이 순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영원을 향해 가리라.
“자식들이나 집사람한테 종종 메시지를 보내는데 가족들이 감동해서 울기도 해요. 시인 같다고 아버지 시집 내드려야 한다는 말도 하고.”
인생의 길목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섬광을 발견한 순간
먹고 사느라 바빴던 남자는 애틋하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무를 가까이했다. 예순이 넘어서야 마음속에 일렁이는 것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저녁 7시만 되면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살이에서 찾아낸 것은 색소폰이었다. 우연히 들었던 색소폰 소리가 좋아 무작정 악기를 사고 학원을 다니며 음계공부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2023년 고산면의 하나뿐인 실버밴드 ‘만경밴드’가 탄생했다. 총 12명 구성원의 평균연령은 60~70대. 만경밴드 멤버들은 각각 드럼, 색소폰, 기타, 보컬을 담당하며 늘 화려한 의상으로 등장해 좌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요양보호시설, 주간보호센터, 시골 장터, 마을 축제 등 모든 곳이 그들의 무대이다. 개성 넘치는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이가 바로 강영희 씨다.
“내가 유능하고 똑똑해서 대표가 된 건 아니에요. 나는 조용한 리더가 되기로 했죠. 뒷바라지하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해요. 우리가 젊어서는 먹고 사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고 연륜이 있으니 그동안 먹고 사느라 못했던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밴드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죠.
나는 타인에게 표본이 될 정도 아름답거나 헌신적으로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활신조에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왔다고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죠. 그런 하루 중에서도 뭔가 의미있는 것을 찾아야죠. 대부분은 그것을 발견 못 하지. 나는 계속 찾고 발견하고 싶어요.”
우리도 인생의 조각 중에 분명 그러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늦지 않았다.
/글·사진=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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