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파출소장 이승렬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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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삼기리 종암마을입니다

- 고향마을 파출소장 이승렬 씨 이야기



고산 삼기초등학교는 ‘1946년 고산초등학교 삼기분교로 문을 열어 2003년 삼우초등학교와 통합되며 문을 닫기까지 57년 동안 3,500여명의 아이들을 길러냈다고 한다.’(위키백과) 20여 년 전에 삼기초등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이 학교의 터는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공동체지원센터, 귀농귀촌지원센터, 로컬푸드 가공센터로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은 완주군 미래행복센터가 자리하며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 학교는 참 복이 많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주에 살던 내가 완주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학교에서 열린 2012년 퍼머컬처학교 과정이었으니 나도 이 터가 가진 복을 조금은 나누어 받지 않았을까 싶다. 38년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했고 고산파출소장을 끝으로 지난 630일에 퇴직한 이승렬 소장님은 삼기초등학교 25회 졸업생이다.

 

고향은 종암마을입니다. 삼기초등학교를 나왔어요. 신작로 길이 있었지만, 봉림재를 넘어서 다녔죠.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였어요. 학교 갔다 오면 소 풀 베다가 먹이고 그랬지요. 제가 32녀 중에 장남이에요. 그래서 부모님 일을 많이 도왔지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는 안했어요. 중간치기를 많이 했죠. 산에 올라가서 중간치기를 열 명이 하면 서너 명이 더 놀다가 들켜서 혼나기도 하고 그랬어요. 학교 갔다 재를 넘어오면서 개구리 잡아서 구워서 먹고 그랬죠. 봄 되면 산에 가서 진달래 꺾어서 먹고. 나 학교 다닐 때는 한 학년에 60명씩 두 반이었어요. 제가 살아보니까 고산이 물이 진짜 좋아요. 그때는 다슬기를 많이 잡았어요. 마을 어머니들이 다슬기를 잡아서 아이들 학비 조달하고 그랬죠. 다라이에 다슬기를 한가득 잡아서 팔았어요. 마을에 중앙시장에서 다슬기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낮에 잡은 다슬기를 밤에 그 사람 집에 가서 무게 달아서 팔고 그랬죠.”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작년 여름에 이승렬 소장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저녁에 친구를 태우고 원산마을에 들어섰는데 큰 나무가 길 위로 쓰러져 있어서 119에 신고를 했고 10분쯤 후에 현장에 맨 처음 도착한 분이 바로 이승렬 소장님과 동료 경찰분들이었다. 그때 소장님은 소방관, 경찰관, 면장님과 함께 밤늦게까지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면장실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것을 기억해내셨다. 보통 공직자들은 자기 고향으로 발령받을 때 망설이기도 한다는데 이승렬 소장님은 오히려 고향인 고산파출소 근무를 자원했고 그곳에서 경찰 생활의 마지막 13개월을 고향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38년 경찰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서 의경으로 군대를 마치고 바로 경찰시험 합격해서 초임을 무주에서 근무했죠. 무주에서는 6년 정도 근무했고 전주에 10년 있다가 완주경찰서에서 한 20여 년간 근무했어요. 그 사이에 군산도 가고 장수도 가고 했는데 그래도 길게 있었던 곳은 무주, 전주, 완주에요. 완주가 가장 오래됐죠. 우리 집이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자식 욕심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그랬어요. 시골애들인데 도회지 아이들 같다고. 항상 옷도 깨끗이 입히고 머리도 상고머리로 깔끔하게 잘라놓고. 사람들이 다 칭찬했어요. 우리 어머니 성함은 박영자. 72세에 돌아가셨어요. 사랑이 크신 분이었죠. 그런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그러셨지요. ‘고산파출소 소장 한번 하면 좋겠다고.’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고산파출소 소장으로 가게 됐어요. 그래도 너무 좋았습니다. 고향 분들이 참 따뜻하더라고요. 너무나 고마웠고 너무나 많은 대우를 받았죠. 고향 친구들도 사회활동 활발하게 많이 하고 있는데 도움도 많이 주고 환대해줬죠. 지난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경찰이라는 것을 해보니까 범인을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찰이라는 존재가 주민들에게 안심을 줘요. 저는 고산파출소 근무할 때 항상 외등을 켜놓으라고 했어요. 밤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불을 보기만 해도 안심할 수 있게. 마치 등대처럼요.”

 

TV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경찰이 언제나 범인을 잡으러 다니며 다소 강압적인 느낌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많은 경찰은 시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밤낮없이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하나라도 더 예방할 수 있을까. 이승렬 소장님은 이런 일들이 경찰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했다.

 

고산지역은 의외로 교통사고가 많아요. 보이스피싱 사고도 많고요. 그 두 가지를 줄이기 위해서 중점적으로 노력했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도로 위 카메라 설치 작업도 진행했고, 보이스피싱 관련된 것은 농협, 새마을금고, 신협 책임자들과 수시로 회의하면서 예방도 많이 했죠. 전라북도만 해도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액이 연 60억 정도고 작년에 전국적으로 신고된 피해 발생액이 천억 정도 됩니다. 고산 같은 경우도 하루 한 건 정도는 발생한다고 보면 되죠. 이건 어르신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고 젊은 연령대도 피해를 많이 입습니다. 퇴임하기 전까지 마을마다 다니면서 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다 이루진 못했네요. 나름대로 하긴 했는데도 시간이 짧아서 다 이루진 못했죠. 고향이라서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아마 하늘에서 보고 계셨겠죠.”

 

소장님은 경찰이 천직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천성이 잘 쉬지 못한다고 했다. 현직에 있을 때도 3일 이상 휴가를 간 적이 거의 없어서 퇴직하면 여행이나 실컷 다니고 편안하게 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며칠 쉬지도 못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제가 무주에 처음 발령 났을 때 그 마을 이장님이 저한테 경찰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봐도 학교 선생님을 하면 딱 맞겠다고. 인상이 경찰인상이 전혀 아니라고요. 제가 순하게 생겨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제가 38년 경찰 생활 하는 동안 징계 하나 안 먹었어요. 원래 경찰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징계가 많은 편인데 저는 한 번도 없었죠. 시말서 하나 사유서 하나 제출해본 적 없어요. 지나고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경찰 시작할 때만 해도 경찰이 지금처럼 친절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강압적이어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저는 그 당시에도 그냥 친절하게 잘 대해줬어요. 지금의 경찰상이랑 맞았던 거죠. 경찰이라는 게 언제나 주민 가까이 있어야 해요.”

 

이승렬 소장님은 퇴직하고도 고산지역의 주민분들로부터 7~8번의 송별회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몇 군데 더 송별 모임을 제안받았지만 고마운 마음만 받고 사양했다고 한다. 어두워지면 고산파출소에 항상 켜두셨던 외등처럼 성실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지켜낸 것에 대한 당연한 대우였을 것이다. 소장님이 새로 일을 시작하신 일터에서도 외등처럼, 등대처럼 잔잔하게 빛을 밝히는 삶을 사시길 기대한다.



/ 글·사진=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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